▲ 한석호 노동운동가

사회의 불평등 상태를 분석하는 공식으로 1대 99와 10대 90이 있다. 부의 불평등을 각각 상위 1%와 상위 10%를 기준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둘 다 자본주의 현상이기는 한데, 어느 측면이 더 문제인가에 따라 같은 자본주의라 해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사회를 더욱 고달프게 하는 것은 10대 90이다. 거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내포돼 있다. 상위 10%는 보수층으로만 구성돼 있지 않고 진보 범주에 속한 계층도 많은데, 그들이 불평등 심화에 편승해 최상위 1%의 엄폐물이 되고 ‘보수와 진보의 상위 10% 불평등 동맹’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49.1%에서 2015년 49.65%, 2016년 49.79%로 계속 상승하더니, 2017년에는 급기야 절반을 넘겨 50.65%가 됐다. 나머지 하위 90%의 소득은 다 합쳐도 절반이 안 된다는 의미다. 심각하다 못해 아찔하다. 혹시 최상위 1%의 점유율이 너무 높아 그런 것은 아닐까 살펴봤다. 같은 시기 최상위 1%의 비중은 14.04%에서 14.44%와 14.54%를 거쳐 15.26%에 이르렀다. 그것을 바탕으로 상위 10%의 50.65%에서 최상위 1%의 15.26%를 빼 보니, 35.39%가 나왔다. 차상위 9%의 소득이 35.39%라는 의미다. 소득이 최상위 1%뿐만 아니라 상위 10% 모두에게 집중되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 등의 자산 불평등은 어떤지 보자.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18년 3월 말 기준 상위 10%가 보유한 순자산은 42.3%였다. 자산은 소득이 한 해 두 해 10년 20년 누적된 것이라는 점에서, 상위 10%의 순자산이 40%를 넘는다는 통계는 10대 90 불평등이 얼마만큼 고착돼 있는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심각한데, 김낙년 분석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김낙년의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에 따르면 상위 10%가 소유한 자산은 무려 66.4%고, 하위 50% 자산은 고작 1.7%다. 김낙년은 비중을 잘게 분석했는데, 1상위 0.1%의 자산은 9.2%, 2상위 0.9%의 자산은 16.8%, 3상위 4%의 자산은 24.8%, 4상위 5%의 자산은 15.6%다.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을 바깥과 비교해 보자. 상위 10% 바로 아래 중간층 40%가 소유한 자산 비율은 31.7%다. 총자산의 평균값이 1이라 할 때 이들 40%가 보유한 자산은 0.79다. 중산층으로 표현되는 이들의 자산이 평균치보다 적다는 뜻이다. 10대 90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고 실재를 반영하는 현실이다. 암담하고 허탈하고 끔찍하고 등등 국어사전의 온갖 부정적 수식어를 덧대도 과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10대 90의 불평등은 심각성에 부합하는 만큼의 사회 현안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불평등의 정점인 재벌에 있다. 좀 더 평등한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 정부와 정치에 있다. 제대로 알리지 않는 언론에 있고, 똑바로 가르치지 않는 교수와 교사에게도 있다. 한데 여기까지 나열하고 보니 의문이 생긴다. 이들의 삶에서 10대 90의 불평등은 불편하지 않다. 대부분 10대 90으로 혜택을 보는 상위 10%의 계층이다. 굳이 쟁점으로 만들어 불편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회 쟁점으로 잠깐 떠오르면 한마디 보태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만 해도 개념 있다는 찬사를 듣는 사회다.

세계의 불평등 개선 역사는 사회운동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흐름을 만들고 정치에 개입해서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꾼 역사다. 그 측면의 문제제기다. 진정 책임을 무겁게 떠안아야 할 세력은 사회운동이다. 불평등 개선이 존재 근거인 노동운동뿐 아니라 여성·교육·생태 할 것 없이 제반 사회운동은 불평등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불평등과 직접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페미니즘·환경운동·교육운동을 가로막는 원인에도 불평등은 한몫한다. 불평등에서 오는 박탈감 및 상층으로 진입하려는 경쟁이 여성 혐오·교육 불공정·생태 파괴를 부르는 주요 요인의 하나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10대 90의 불평등 개선에 소홀하다.

한국의 10대 90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하고 있는지 '조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 조국 사태의 본질이다. 조국 집안의 교육과 사모펀드에 내재된 진실은 상위 10%의 성채를 공고히 구축하려는 욕망이다. 거기에서는 진보도 보수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사회 불평등이 계속 심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밝혀진 것이다. 상위 10% 성채 안의 보수와 진보가 진영갈등을 방패막이 삼아 불평등 동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강고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비난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상위 10%의 보수와 진보가 구축하고 있는 불평등 동맹의 적대적 공생구조를 흔들어야 한다(불평등 자체가 태생적 근거이고 상위 10%에 훨씬 많이 진입한 보수는 언급하지 않겠다).

10대 90을 외면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고 기득권일 뿐이다. 10대 90의 개선에 매진하지 않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고 이익집단일 뿐이다. 20세기 사회주의 붕괴 직전의 소련·동유럽 당 간부들이 사회주의와 진보를 주창했다고 해서 역사가 그들을 운동 및 진보로 규정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운동 및 진보가 10대 90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이다. 10대 90의 불평등에서 상층에 안주하며 하층과는 다른 삶을 누리고 있는 자신을 감추려는 사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조국 사태가 던지는 교훈이고 과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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