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추석 때 시골집에 내려가니 먼저 와 있던 조카들이 나를 무척이나 반긴다. 와이파이, 와이파이, 무슨 사자성어 되뇌듯 외치며 뒤를 따른다. 휴대용 와이파이 라우터를 내어 주니 신났다. 마룻바닥에 제각기 자세로 눕고 엎드린 채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또 본다. 놀이의 장이다. 얼마 전 이사해 집 고치느라 바쁜 동네 아빠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싱크대 조립 방법을 익힌다. 수전 교체와 전기 배선 작업도 거기 다 있다며 추천한다. 언젠가 옥상 텃밭 일굴 때도 그랬단다. 배움의 장이다. 유리창을 다 가려 그 안쪽을 볼 수 없던 어느 점거농성장 바깥에서 창문에 코 부딪혀 가며 기웃거리는데, 바깥을 지켜 농성하던 동료들 여럿이 머리 맞대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슬쩍 보니 유튜브 중계 영상이다. 그 안쪽이 생생하다. 현장을 전하는 강력한 미디어의 등장이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조사에서 지상파 방송을 제치고 2위에 오른다.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 1위로 꼽힌다. 전 연령대에 걸쳐 그렇다지만 50대 이상의 이용률이 특히 높다고 조사 결과는 전한다. 태극기 휘날리는 보수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가짜뉴스의 장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농성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 유튜버가 저기 경찰 방패 사이 좁은 틈으로 현장을 전하고 있다. 숙식해 가며 며칠째 방송 중이라고 지켜보던 농성자가 설명했다. 공감과 응원의 댓글이 화면을 흐른다. 세상 참 빠르게 변해 간다고, 노안 때문인지 멀찍이서 안경 들어 살피던 누군가 말했다. 비정규직, 불법파견 따위 취약한 노동권의 현실만이 쉬이 변할 줄을 몰라 여기저기 노동자들 농성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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