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일용직 노동자가 원도급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고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음에도 사고 책임은 하청업체만 떠안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용직 노동자가 사고 이후 원도급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데다 원도급사와 하청업체 간에 도급계약서가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고를 당한 일용직 노동자는 “건설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제때 작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원도급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원청 소속 노동자이기에 사고 책임은 원청에 있으며 원청이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장 무너져 척추·갈비뼈 등 4곳 골절

29일 건설업계와 법무법인(유) 현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원도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도급사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원청 소속 노동자임에도 사고에 대한 처벌은 하청업체만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원청인 J시스템은 제반시설 안전 여부를 면밀히 살핀 후 작업지시를 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는데 사고 책임에서는 벗어났다”며 “지난해 3월 원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2016년 10월 초부터 J시스템 공사현장에서 전기 입선작업을 했다. J시스템 대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A씨는 같은달 22일 청주 건설현장으로 온 첫날 천장 안에서 작업을 하던 중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했다. 3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한 A씨는 척추와 갈비뼈, 왼쪽 손목·꼬리뼈가 골절됐다. 올해 9월까지 후유증 치료를 받았다.

일용직 노동자인 A씨는 사고 한 달 후 산재요양신청을 위해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J시스템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현장소장이 가져온 근로계약서에는 근로계약 당사자로 J시스템이 명시돼 있었다. J시스템 사장 사인도 기입돼 있었다. A씨가 기입해야 하는 개인정보와 사인난만 공란이었다. 이후 산재를 인정받고 산재요양급여를 수령했다.

사고로 인해 41%의 노동력을 상실한 A씨는 지난해 3월 J시스템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얼마 후 사고에 대한 고용노동부 조사와 검찰 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형사재판에서 A씨를 고용한 J시스템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A씨가 J시스템 노동자가 아니라 당시 현장소장이던 S씨가 운영하던 하청업체(사업자등록증상 대표는 현장소장 동생) 소속이고, 사고 책임이 하청업체에 있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J시스템 사장에게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했고, 올해 6월 1심 재판부는 현장소장에게 500만원 벌금을 부과했다. 현재 검찰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노동부, 재해자 빠진 채 현장소장 진술만 들어

전수조사를 통해 2016년 J시스템 청주 건설현장 사고를 인지한 노동부는 지난해 7월 재해조사를 했다. 당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청주지청은 천장 상부 작업발판 미설치·안전대부착 설비 등 추락방지 미실시 등의 문제를 확인했다. 그런데 재해자인 A씨는 조사하지 않았다. 현장소장 진술을 중심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노동부는 재해자인 A씨를 J시스템 소속으로 인지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청주지검에 원청과 하청 사업주를 각각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청주지검의 세 차례 수사지휘로 보강수사를 거친 노동부 청주지청은 올해 3월 원청인 J시스템 사장을 불기소의견으로, 하청업체 사장인 현장소장을 기소의견으로 청주지검에 송치했다.

A씨가 원청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원청 소속 노동자임에도 원청 사업주가 사고 책임에서 벗어난 이유는 노동부가 A씨를 현장소장이 운영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봤기 때문이다. 청주지청 관계자는 “원청과 하청업체 사업주는 하청업체가 산재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상 차원에서 원청과 근로계약서를 쓰고 산재보상을 해 줬다고 한다”며 “원청은 하청에 노무도급을 줬고 도급계약서가 존재한다”로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원청과 하청 사업주 모두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수사지휘가 내려와 보강수사를 했다”며 “원청에 책임을 부과하려면 원청 근로자와 하청 근로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데 당시 원청 근로자는 없었다”고 말했다.

J시스템과 하청업체의 실질적인 사장인 현장소장은 A씨가 하청업체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원청 대리인과 현장소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J시스템에서 노무도급을 받은 하청업체가 산재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치료를 위해 사고 후 근로계약서를 쓰고 원청 소속으로 산재처리를 했다”며 “애초에 A씨는 하청업체 소속이며 A씨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하청업체는 J시스템에서 노무도급비를 받았지만 고용보험·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도급비에 대한 세금만 내고 있었다.

“사고 후 근로계약서 작성이 문제? 건설현장 관행”

A씨는 노동부가 재해자 조사만 제대로 했어도 원청과의 근로계약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고 이후 산재처리 문제로 한 번 전화가 왔을 뿐 사고와 관련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며 “근로계약서만 명확하게 확인했어도 하청업체 소속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현장에 들어갈 때부터 J시스템에서 일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지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말을 듣지도, 하청업체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며 “J시스템과 근로계약서를 썼는데 어떻게 하청업체 소속으로 뒤바뀔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오빛나라 변호사는 “근로계약서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해조사에서 재해자가 원청인 J시스템 소속으로 돼 있는데도 노동부와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근로계약서가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며 “단순히 J시스템과 하청업체 말만 믿고 A씨를 하청업체 소속으로 판단하고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에만 지웠다. 노무도급을 줬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근로계약 내용이 명시된 것은 근로계약서”라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피해자가 진술권조차 행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청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근로계약서를 사고 후 작성했다고 하지만 원청에 고용돼 일하다 사고가 났고 요양급여를 받았다”며 “설사 선의로 원청이 산재처리를 해 줬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문건인 근로계약서와 요양급여신청서는 원도급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근로감독관이 정확한 증거를 두고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도급계약서만을 가지고 근로계약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근로계약서가 사고 후 작성된 것은 건설현장 관행으로 봤다. 송 실장은 “일용직 노동자로 이뤄진 건설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거나 A씨처럼 사고 후 또는 노동부 전수조사 때 일괄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감독관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건설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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