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단식을 하던 기아자동차 비정규 노동자가 47일 만에 마비증세와 호흡곤란으로 단식을 중단하고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또 다른 현대·기아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23일째 집단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식당노동자에게서 빼앗아 간 최저임금을 돌려 달라고, 불법파견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제대로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는 9미터 높이의 철제물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33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교대제 개편을 이유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은 법원에서 불법파견 인정을 받은 노동자들이었다. 고공에서, 그리고 단식농성장에서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철폐와 해고자 복직을 외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도 싸우지만 이렇게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훼손하며 싸운다. 현장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을 하고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노동권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가장 기초적인 권리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중 하나라도 없으면 노동자들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 수는 있으나 진짜 사장과는 교섭을 할 수 없다. 하청업체 사장과는 교섭도 하고 파업도 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 원청이 교섭에 나오지 않는 한 하청노동자의 노동권은 제대로 된 권리가 아니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은 ‘법’으로라도 원청 기업에 책임을 묻고자 했다. 불법파견 소송을 통해 원청이 진짜 사용자이며,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 내고, 이 판결에 근거해 원청 기업과 교섭을 하고자 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한국지엠 비정규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소송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승소하고도 다시 단식농성과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처음 소송이 시작된 때부터 무려 15년이 지났지만 불법파견을 저지른 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원청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을 끌며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사이 비정규직들은 수십 명이 구속되고 수백 명이 해고됐고 수천 억원의 손해배상·가압류를 당해야 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청 기업의 태도는 변화가 없다.

이것은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불법파견을 저지른 원청 책임자를 제대로 기소하지 않았다. 법원은 불법파견을 경영행위로 간주해 매우 관대한 처벌을 내린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조사하고 시정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있지만, 그동안 법원 판결을 핑계 대며 역할을 방기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는 판결 내용을 축소하고 왜곡해 현대·기아차에 유리한 방식으로 시정명령을 하려고 한다. 노동부는 한국지엠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 해고에 대해서도 눈감고 있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원청 기업은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사죄하지 않으며, 그 불법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은 단식을 하고 고공에 오른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단식과 고공농성은 법이 일터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원청 기업들이 얼마나 무소불위 권한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이윤을 위해 비정규직을 얼마나 잔인하게 착취하는지,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보여 주는 지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자신의 몸을 내던진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가 수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불법파견이 없어지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불법파견 책임자들이 처벌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원에서 노동자들이 정당하다고 판결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권한은 갖고 있으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원청의 무한 권력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원청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려면 비정규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노동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원청 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2018년 말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투쟁을 통해 원청 기업이 하청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책임을 지도록 만든 바 있다. 그때처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올해는 노조법 2조를 개정해서 원청 기업이 하청노동자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오도록 만들자. 하청노동자들이 단식과 고공농성 등 자기 몸을 희생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용자와 교섭하고 제대로 파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보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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