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민부론?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왠지 어색하고 부족한 단어다. 야당에서 ‘민간주도 자유시장경제’라며 발표한 정책기조란다. 시민 모두가 잘산다는, 말 그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슬로건에 비해 실행 내용은 참혹하다. 마치 공부는 하지 않고 높은 점수만 바라는 학생이랄까. 내용 전체를 이해하고 그 당부를 논하기에는 턱도 없는 능력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동결 및 차등적용, 저성과자 해고, 노동시간단축 유보, 파업 중 대체근로 전면허용과 파업노동자 직장점거 금지, 사용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처벌 금지 등 그들이 내놓은 노동정책은 정책이라 할 수 없다. 단언컨대 그런 정책으로 5만달러 달성은 불가능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실패 경험을 잊었던가.

이날 발표를 두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민부론’을 따온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다면, 그가 ‘자유방임주의’라는 초기자본주의 경제만 설파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방대한 책과 이론에는 노동과 노동의 중요성을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 발전의 기초가 ‘노동’임을 분명히 하고,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까지 적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영국은 18세기 산업화의 선두를 차지한 국가다. 당시 정파와 입장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노동가치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1800년대 초 이들은 연소자 노동을 금지(보호)하는 법을 연이어 만들었다(도제법·공장법 등). 야당이 국부론을 흉내 내어 자신들을 포장하려 했다면, 지하에 있는 애덤 스미스를 욕보이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저 이런 말 정도로 ‘반격’을 막지 못함을 잘 안다. “설마 했는데 크로스오버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의 말이다. 촛불정신과 노동존중 사회 기치를 내세운 세력과 이에 맞서는 자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이미 역전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비정상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안타까움만 커져 간다.

“이런 토론회에 무려 200여명이 오셨다는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지난 24일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가 개최한 통상임금 고정성에 관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의 말이다. 너무나 뼈아픈 지적이다. 꽉 들어찬 청중에 우쭐했던 필자에게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정말이지 오늘의 노동현장을 제대로 꼬집은 한마디였다. 돌이켜 보면 지난 2년간 현실법과 상식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아직까지도 통상임금 문제조차 시원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민부론’ 같은 어설픈 ‘반격’이 등장하고 나아가 힘을 얻기 좋은 환경이지 않은가.

요즘 들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동정책 컨트롤타워가 있는가”라고 묻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노동정책 집행 당사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지적이라 더 안타깝다. 필자도 정말이지 누구 의지에 따라 노동정책이 집행되는지 알 길이 없다. 노사 모두가 반대하는, 정치권에서도 동의하지 않는 번지 없는 제도들이 명멸해 가고 있다. 다음 순번은 아마 노동시간단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시행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규모별로 그 시행시기를 연기하겠다는 주장이 여당과 정부에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구조적인 문제는 해소하려 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예측을 좇아 위기만 면하려 한다. 어떨 때는 컨트롤타워는 고사하고 정부에 노동정책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반격’이 거세다. 더 거세질 것이다. 당연한 말의 반복이지만, 지금이라도 목표와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마침 2기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여성대표 위원 등 일부에 대한 선임이 남아 있다. 문성현 위원장이 경사노위를 책임질 것이다. “할 도리를 하겠습니다.” 그의 토론회 축사 중 한 대목이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육성을 들었는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경사노위가 처한 녹록지 않은 환경을 떠올리면, 그가 보인 자신감이 그 자리를 찾은 많은 이들을 안도케 했으리라. 경사노위가 경제·사회·노동 문제의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위상을 공고히 하고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문성현 위원장과 2기 경사노위에 바란다. 반격을 막아 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물러설 곳이 없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