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법원이 통상임금 구성요건으로 삼는 ‘고정성’을 ‘임금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률적인 근거가 없는 모호한 개념이 법적 판단 기준이 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15층 대강당에서 '통상임금 판단, 핵심은 무엇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법률 전문가들과 노조간부들은 법원이 고정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재직자 요건'을 비판했다.

◇"법원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판결로 논란 자초”=기업은행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퇴직자 1만1천202명은 2014년 통상임금 소송을 냈다.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미지급한 연장·휴일근로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1심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근거해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법령이 예정하지 않은 '고정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통상임금 요건으로 추가하는 것은 통상임금 범위를 당초 입법자 의도보다 좁히는 것으로 해석 범위를 넘는 부당한 법형성”이라고 비판했다.

통상임금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정기성과 일률성만을 적시하고 있다. 권 교수는 통상임금의 개념에 고정성이 요구되는 것은 법정수당을 계산할 때 계수 기능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일률성에 포함되기 때문에 없애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재직자 요건과 관련해 “기왕에 제공된 근로의 대가로 이미 발생한 임금채권을 사후적으로 상실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기상여금의 본래 성격이 소정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인 것을 감안하면 재직자 요건을 붙이는 것은 불필요한 제약이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통상임금의 본질은 간단한 산식이어야 하는데 판단기준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게 만든 1차적 책임은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한 자본”이라며 “이를 교정하지 못한 정부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판결로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한 법원 책임도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임금은 임금성·정기성·일률성의 3단계의 판단구조를 따라야 하고 법문에 규정돼 있지 않은 ‘고정성’을 독자적인 요건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직자 요건 붙이기는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격"=비슷한 의견이 이어졌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직자 요건을 들어 임금채권 발생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며 “통상임금성 인정 여부 때문에 채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입법취지에 반한다”고 말했다.

김도형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정기상여금은 복리후생적 임금과 달리 그 성질상 특정 시점에 특별한 목적의 필요에 대응해 지급돼야 할 필요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며 “종속적 관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격보호를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는 노동법의 관할권을 지키려는 사고를 견지하고 있다면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요건을 적법·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합당한 논거를 찾아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증언도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더해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노동자들의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요건이 붙거나 휴가비로 전환되고, 분할지급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입법취지와 달리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연장근로시 평소 일한 것보다 1.5배의 임금을 받지 못했고, 사용자들이 초과근로를 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장시간 노동이 조장됐다”며 “통상임금을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한 일체의 금품’으로 정의하고, 시행령에 일시적·일회적 등 제외 금품을 명시하는 쪽으로 근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