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혜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아니, 그때는 군말 없이 해 놓고 왜 이제 와서 신고를 하고 그래요? 사람 기분 나쁘게.” 최근 임금체불 사건 대리를 맡아 사용자와 통화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로 노동자는 이미 사용자에게 두 차례에 걸쳐 연장근로에 대한 체불임금 지급을 요청했고 이를 무시한 건 사용자였다. 두 번째로 임금은 노동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제공한 노동에 대해 사용자가 알아서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사용자 항변은 자주 듣는 편이다. 법을 위반한 건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신고까지 하냐며, 노동자를 ‘정 없는’ 사람으로 매도한다. 신고를 할 때까지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본인의 잘못은 쏙 빼놓고.

‘정 없는’ 노동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업무시간보다 30분 일찍 회의를 하는 회사에서 당당하게 30분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을 청구한다거나, 매일 오후 6시 정각에 부장님보다 빨리 칼퇴근을 한다거나, 한 달에 한 번씩 꼭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인 권리를 잘 챙기는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가끔은 동료 노동자로부터 사회생활 못한다고 핀잔받기 십상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저비용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 전제를 가지고 보면 사업주들에게 노동자들은 자칫 비용절감 대상으로 비춰진다. 노동자들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임금)는 최대한 낮추되,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자들이 ‘알아서’ 헌신하길 바란다. 노동자들을 이윤창출을 위해 활용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용자 시선에서 수단으로서의 노동자와 그에 수반하는 비용은 사용자 통제하에 놓여야 하며, 통제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사용자에게 예측불가능한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경계대상이 된다. 사용자가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 외에 추가로 발생한 임금을 청구한다거나, 연장근로를 거부함으로써 업무수행을 하지 않고 추가채용을 고려하게 하는 등의 행위는 법적으로는 노동자 권리가 맞으나, 사용자에겐 불쾌한 비용지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화되고, 임금체불 금액이 매년 최고 금액을 갱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면상 위법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액을 급여로 책정하고, 이윤창출을 위해 장시간 근로를 시키면서 그 가산수당은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최저임금마저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수두룩하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올해 7월 기준 임금체불액은 1조112억원을 넘어섰다. 2019년 연말 예상 임금체불액은 1조7천300억원으로, 지난해 임금체불액인 1조6천472억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예전에 한 사업주가 전화상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질문이 “어떻게 하면 연장근로수당을 안 줄 수 있는가?”였다. 그런 방법은 없다고 답을 하니 뒤이어 한 질문이 가관이었다. “직원이 신고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법적으로 줘야 하는 걸 알지만 우선 지급하지 않고 나중에 노동자가 신고하면 주겠다는 것이다. 돈은 안 주고 싶은데 연장근로는 시키고 싶은 상황에서, 노동자가 신고를 안 하면 돈이 굳으니 비용절감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가 임금체불액 1조원을 넘게 했다. 신고해서 밝혀진 것이 1조112억원이지, 숨겨진 것까지 더하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은 사용자가 절약해 본인 이익으로 만들 수 있는 비용절감의 대상이 아니다. 노동자가 굳이 신고하지 않아도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사업전략이 아닌 남의 것을 빼앗는 도둑질에 불과하다. 편의점에서 빵을 훔친 사람은 이를 신고한 주인에게 “말로 하면 되지, 왜 신고를 하고 그래요? 기분 나쁘게”라며 당당하게 굴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의 행위가 명백한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임금체불 사업주들이여, 제발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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