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상담을 하다 보면 전문가 수준으로 법령과 판례를 조사해 오는 의뢰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체는 아니지만 법원이 공보를 통해서 판결문을, 그리고 법제처 사이트를 통해서 판결 내용을 전자적인 형태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이 일일이 법원의 판례공보를 뒤적이지 않더라도, 검색 엔진을 통해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판결에 관한 임의어 검색이 가능해졌다. “부당노동행위”라고 입력하면 관련된 판결을 검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판결은 최종적이고 강제력 있는 유권해석이다. 일반인이나 행정기관도 해석을 하지만, 분쟁을 종결지으면서 불이행시 강제력이 있는 것은 ‘판결’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의 논증 근거와 결과가 공개돼 판결이 적법하고 정당한지에 관해 비평 대상이 돼야 한다. 판결 내용이 법질서에 부합한 옳은 판단인지, 아니면 자의적인 판단인지를 사후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후적으로 검증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는 법관으로서는 자의적인 판단을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말하자면 판결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전문성을 가진 법관이, 철저한 논증을 거쳐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판결이 권위를 갖고 정당성이 부여되며 신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정하고 있다.

행정청 처분도 마찬가지다. 처분은 행정청이 국민에게 하는 1차적인 유권해석 결과물이다. 행정청의 처분 또한 판결과 마찬가지로 개별 공무원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해선 안 되고 전체 법질서에 부합해야 한다. 그 점에서 법률에 근거를 둔다는 외관을 넘어서는 정당성이 부여된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은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1조)함이 필요하고, 행정작용은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5조)고 정한다. 판결이나 처분이 갖는 정당성의 핵심은 투명한 공개를 통해 자의적인 판단이 억제되고, 그를 통해서 적법하고 정당하며 일관성 있는 처분(판결)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결정서,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재결서도 판결서와 마찬가지로, 전면적인 공개와 임의어 검색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도 각 기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사례집을 내고 사이트 내에서 검색이 가능하게끔 돼 있기는 하지만, 전체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다. 업무상질병의 경우에 질병판정위 심의를 거쳐서 처분을 내리므로 처분 내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처분에 관한 이의신청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의 결정, 행정심판으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의 재결이 있다. 공단의 처분서에는 처분에 이르게 된 근거와 결론이 어느 정도 제시되긴 하지만, 판정서 등에는 판단의 근거가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으므로 법원의 판결서에 못지않게 중요한 서류다.

또한 상근직인 법관과는 달리 질병판정위·심사위·재심사위는 비상근 위원이 절대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판정·결정·재결의 일관성이 더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위원들로 하여금 자의적이지 않으면서도 내용적으로 정당한 처분을 심리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판정서 등의 내용을 사후에 모두 공개해 서로 비교가 가능함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한 건의 판정서 등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국가재정이 투입되므로 세금을 내는 국민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모든 내용을 알 수 있고 검색을 통해서 쉽게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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