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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한 정의란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정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과연 노동자에게, 노동현장에서 정의란 무엇일까. 답을 찾기 위해, 미처 다 읽지 못한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부족한 실력 탓인지 여전히 어렵다. 솔직히 특정 부분은 ‘시’처럼 느껴질 정도다. 센델 교수가 ‘정의의 대가’들이 정의한 ‘정의’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풀어 가는 가운데 단연 필자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롤스의 ‘평등주의 : 차등원칙’이다.

롤스는 획일화된 평등을 능력주의 시장경제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롤스가 내놓은 대안은 소위 차등원칙으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선천적인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연마하도록 독려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둔 대가는 공동체의 몫임을 이해시킨다(235쪽). 여전히 어렵다.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인 차등의 원칙을 샌델 교수는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이용해 얻은 이익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자"는 게 롤스의 주장이다(A theory of justice).

롤스가 정의한 ‘정의’를 주창한 곳은 1971년 미국이다. 자본주의 종가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미국에서 미국인이 한 주장이다. 미국이 가장 잘나갈 때가 아닌가. (필자로선) 놀랄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날 미국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시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선거 후보자의 켐페인에까지 닿아 있지 않은가. 미국 사회는 ‘완전한 자유시장주의 경제체제’일 것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무지의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애써 ‘같은 출발선에 세운 것’만으로는 ‘정의’가 아니라는 롤스의 주장은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전혀 무(無) 정의한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재능을 이용해 얻은 이익을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는 롤스의 발상은 우리 사회가 생각조차 하기 어렵지 않은가.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어찌 공유한단 말인가"라는 반문은 우리 관점에서는 지극히 정당한 반응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도가 시대 명제로 충분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한 터다. 롤스가 주장한 정의와 같은,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급진적인 정의는 아니더라도 ‘기회의 평등’이나 ‘같은 출발선’만이라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는 명제에 구성원들이 합의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동시대 위 합의가 불과 수년 만에 크게 후퇴하고 뿌리째 뽑힐 지경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평가다. 특히 노동자들은 ‘정의’에 대해 더 큰 위기를 느끼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결과의 공유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출발선’에 설 기회를 공평하게 누리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회라도 평등하게 보장하는 기본은 무엇일까. 우리가 처한 노동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은 하나다. 노동기본권의 완전한 보장이 그 시작이다. 노동자 2천800만명 중 겨우 10% 남짓 정도만이 노동기본권을 누린다. 그것도 대부분 대규모 제조업이나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2천500만명에 이르는 영세한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그림의 떡이다. 적은 임금과 열악한 사업장 환경에 시달린다. 노동기본권은 말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과연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훨씬 쉽게 노동기본권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가장 절실하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실천 책무는 국가에 있다. 정부와 의회의 존재이유다. 제도적으로 보자면, 한참 논의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87호·98호) 비준이 그 시작이라는 것에 이론은 없다.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면 기업과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노동조합이 출현할 것이다. 허가제처럼 운영되는 신고제를 폐지하면 그동안 노동조합 설립부터 개입하던 정부의 통제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자연히 그동안 ‘기본’조차 누리지 못한 대다수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을 입법예고했다. 그 내용을 보고, 과연 ‘기회 평등’을 주장한 정부가 제출한 법안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기본협약 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개정안에 이와 관련이 없는 사용자단체 요구사항인 쟁의행위시 직장점거 금지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을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비준으로도 충분했던 것을, 이제 와서 법 개정안까지 함께 제출하더니, 내용은 기본협약 핵심에도 미치지 못한다. 높은 수준의 ‘정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기회의 평등(작은 정의)만이라도 이룰 수 있는 입법 과정을 간절히 희망한다. 정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정한 정의의 '정의'를 돌아보길 소망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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