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언론에 호소하고, 단식투쟁까지 올라오기 전에 안 써 본 방법이 없어요. 결국 마지막 선택한 것이 여기(철탑 고공농성)예요. 여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서 내려가는 게 차라리 속 편합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CCTV 철탑 위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이 17일로 100일을 맞았다. 그가 머무는 공간은 지름 150센티미터의 조그맣고 둥그런 낮은 통 모양을 하고 있다. 0.5평(1.766제곱미터) 공간에 키 180센티미터의 몸을 걸치고 버틴다. 고공농성이 길어지자 팔에 제대로 힘 주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근육은 제 기능을 잃었다. 그렇지만 김씨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고, 전화로 가벼운 농담도 던졌다.

"아래에서 보면 철탑이 참 위험하고 힘들어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태풍 올 때 돈 안 내고 놀이기구 타는 것이라 생각하고 충분히 즐겼어요."

김씨는 지난 6월3일 삼성에 사과와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철탑에 올랐다. 삼성 서초사옥 본관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김씨가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지만 삼성은 여전히 답이 없다. 김씨는 "동지들한테 마음의 빚이 많다"며 "연대해 응원을 보내오는 동지들 덕분에 버티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삼성 해고노동자 이재용(59)씨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김용희씨 곁을 지키고 있다. 삼성중공업에 다니던 이씨의 불행은 1992년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시작됐다. 이씨는 "회유는 물론 협박·공갈에 시달리다 1997년 부당해고됐다"고 했다. 이씨도 김용희씨처럼 삼성의 사과와 명예복직을 바란다.

23년째 투쟁을 이어 온 이씨는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왜 안들겠냐"며 "하지만 목숨 걸고 올라간 용희씨와 함께 끝까지 싸우려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는 2013년 삼성에 이재용씨 명예회복을 권고했지만 삼성은 이후에도 이씨에게 어떤 사과와 보상도 하지 않았다.

김인식 사무연대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지난해 노조가 설립되고 올해 3월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며 "김용희씨의 고공농성도 함께 끝났으면 좋을 텐데 마음이 착잡하다"고 전했다. 지부는 18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고공농성장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김용희씨를 구출하고 싶은 심정이 강한데 싸우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니 연대로 더 많은 힘을 모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우 의원은 "문제를 풀어 보려고 삼성측과 접촉하고 연락하려고 하는데 삼성에서 아직까지 답이 없다"며 "해결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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