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보라·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및 노동법의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은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비준 논의가 국회 테이블에 오른다. 지난 7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정부는 다음달 정부 입법안과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최저임금 제도개선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한 정부·여당과 보수야당이지만 ILO 기본협약 비준은 다른 문제다.

정부·여당과 진보야당은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야당은 강성노조 프레임을 꺼내 "노사관계 힘의 균형이 노조측에 기울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기본협약 비준을 논의해야 한다면 사용자측이 요구하는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금지와 쟁의행위 대체근로 전면허용을 함께 논의하자고 요구한다.

정부가 이미 입법예고안에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2년→3년)과 쟁의행위시 사업장 생산·주요 업무시설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를 담은 상황에서 국회가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기본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동기본권 보장, 국회 문턱 넘을 수 있나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입법예고한 ILO 기본협약 비준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법제처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가 한창이다. 정부는 법제처와 규제개혁위 심사가 완료되면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중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한다.

정부는 7월31일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가입을 허용하되 기업별노조 임원은 될 수 없도록 하고 노조법상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의 경우 개별교섭시 모든 노조에 대한 성실교섭·차별금지 의무를 부여했다. 단협 유효기간 연장과 쟁의행위시 사업장 점거 금지 같은 ILO 기본협약과 무관한 내용도 입법예고안에 담았다. 외교부 내부검토와 법제처 심사가 진행 중인 비준동의안은 국무회의와 문재인 대통령 재가를 거쳐 다음달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회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한정애 의원이 단결권 보장을 중심으로 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김학용 의원은 단협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한국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생산활동 방어권을 강조하며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전면허용 및 사업장 점거와 집회·시위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를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노조 조합원·임원 자격과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며 협약 취지에 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한다.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 들고나온 자유한국당

ILO 기본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국제사회 압박도 거세다. 유럽연합(EU)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담긴 ILO 협약 비준 노력의무 조항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노사는 물론 여야도 인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을 내걸고 사용자측 숙원과제를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 테이블에 올려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신보라·추경호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및 노동법의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를 열고 “ILO 핵심협약(기본협약) 비준만이 아니라 노동개혁 차원에서 전반적인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면 해직자나 실업자가 노조간부로 활동해 정치파업이 일상화하고 불법점거·물리적 강압 등의 투쟁적 노동운동 관행과 결합해 노사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ILO 기본협약은 대부분의 나라가 비준하고,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공식·비공식적으로 약속한 사안”이라며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이 해외법인에서 창출되는 현 상황에서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것은 기업 이미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EU FTA 문제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며 “많은 기업이 유럽에 판매법인과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데 유럽연합 차원에서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선진국가의 기본자세”라고 말했다.

ILO 기본협약 8개 중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협약(29호)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이다. 정부는 105호 협약을 제외한 3개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제사회 노동법인 ILO 협약은 190개다.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8개], 정부정책(우선)협약[Governance(Priority) Conventions 4개], 기술협약[Technical Conventions 178개]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기본협약 4개를 포함해 29개(철회협약 2개 포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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