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여울 공인노무사(이산노동법률사무소)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보호를 위해

우리는 자주 ‘건강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한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를 묻고, 헤어질 때면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한다. ‘건강’은 우리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우리는 건강을 말할 때 주로 몸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몸 상태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함께 이야기한다. 아니 어쩌면 요즘은 몸보다 마음의 상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동안 개인 문제로 치부됐던 일터 스트레스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18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이나 2019년 7월16일부터 시행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3)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와 달리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권고사직·정직·강등 처분 이후 진단받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유능한 광고디렉터였던 김씨는 A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이사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김씨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 A사는 주거래 업체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A사는 재계약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김씨에게 지우고자 했고, 곧바로 김씨에게 사직을 권유했다. 김씨가 주거래 업체와 재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A사에 중요하지 않았다.

김씨는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사직을 거부한 김씨에게 A사는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정직 기간이 끝나고 복귀한 첫날에는 김씨를 이사직에서 일반 팀원으로 강등했다. 강등 이후 김씨에게는 광고디렉터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가 주어졌고, 동료들과의 대화는 단절됐다. 김씨는 정직과 강등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회사와 약 5개월간 법률분쟁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진단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공단의 판정사유는 간단했다. 노동위에서 강등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고, 평소 동료들에 대한 김씨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무상 스트레스 받는 데 정당한 이유는 필요 없다

권고사직과 징계·강등, 동료들로부터 소외 경험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에서 위 사항들을 주요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마도 위 사안에서 공단은 김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씨에게 권고사직 강요와 정직·강등 등의 불이익 처분이 있었다는 점을 공단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공단은 그러한 불이익 처분이 발생하게 된 책임이 김씨에게 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에 대한 회사의 강등처분이 정당하다고 해서 강등으로 인해 김씨가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에게 소외된 원인이 김씨에게 있다고 해서 김씨가 동료들과 말 한마디 하지 못해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공단의 위와 같은 판정은 무과실책임 원칙이라는 산재보험 대원칙에 명백히 반하는 판정이다.

정신질환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본 질환이 개인사유에 의한 스트레스가 아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 것인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여부이지, 업무상 스트레스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가 아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인정 더욱 확대돼야

최근 5년간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환 산재 승인율은 2014년 34.3%, 2015년 38.2%, 2016년 46.4%, 2017년 57.7%, 2018년 75%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승인율로만 본다면 정신질환을 산재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적응장애 등에 국한된 것이며, 공황장애나 수면장애·양극성장애(조울증) 등 일부 질환에 대한 승인율은 여전히 매우 낮다. 또한 과거 정신질환 치료 병력이 있는 경우에는 업무보다는 개인적 요인이 크다며 불승인 판정을 내리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고, 2016년 한 해 동안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470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매년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를 신청해 승인받는 근로자는 200명 안팎에 불과하다. 공단이 정신질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산재 인정 판정을 해야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신청과 승인 문턱이 낮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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