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살아생전 체제 전환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을 테고, 자본주의 아래서라도 한국이 북유럽 사회만큼만 될 수 있다면 여한은 없을 것 같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러면 국민이 지금처럼 피곤하고 답답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 나고 해외여행이 일상인 나라에서 여성 청소년이 신발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하고 송파 세 모녀처럼 자살하는 참담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의 생명들처럼 참혹하게 죽거나 구의역 김군처럼 황망하게 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유경쟁을 선호하는 보수야 그렇다 치고 정의를 선호하는 진보마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거나 모든 책임을 사회구조와 상대 진영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모습을 더는 안 봐도 될 것 같다.

북유럽 같은 사회로 나아가려면 정치·언론·지식인·사회운동 등 각계각층에서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을 소명으로 하는 단체와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세상을 실제로 바꾸려면 흩어지고 분산된 점과 선과 면을 응집된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제도와 관행을 만들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정치체제에서는 대통령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은 불가능하게 됐지만, 대통령 되면 좋을 것 같은 인물로 노회찬과 심상정을 생각했다. 거기에 조국을 덧붙여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조국은 강남좌파라는 한계 때문에 불평등의 실재하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까 의구심은 있었지만, 북유럽으로의 전환은 세상을 일거에 바꾸는 것이 아니기에 조국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노맹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졌다. 조국의 부인에게 실망했지만, 아무리 부인이고 딸이라 해도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조국은 대통령 되기 글렀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제아무리 각자의 삶이 있다 해도 대통령 부인과 딸이 그런 사안에 얽혔는데 어찌 ‘스카이캐슬’ 문제를 풀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이었기에 함께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찬반으로 갈라져 날카롭게 싸우는 혈투를 보면서도 관망했다. 조국 가족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몸담은 운동사회의 이중적 행태 때문이었다. 말과 글은 그럴듯한데 실천과 삶의 모습은 자본주의 중에서도 매우 천박한 한국시스템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있는 모습에 지쳐서였다. 그런 모습을 하도 많이 보고 듣고 지쳐서 나는 아닌 척하며 논란에 가세하는 것이 낯간지러웠다.

그랬음에도 충격은 컸다. 논란의 양태 때문이었다. 노동마저 분단시킬 만큼 심각하게 갈라진 10대 90의 불평등 사회,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 문화, 교육으로 절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한숨 등 사회가 안 그래도 엉망인데, 조국 임명을 찬성하는 사람들 입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의 얘기는 ‘조국의 부인과 딸이 잘못했지만’ 조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임명돼야 한다는 것을 넘었다. 그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조국 부인과 딸에게 잘못이 없다”고 했다. “자식을 그렇게 대학에 보내지 못한 부모가 한심한 것 아니냐”는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극히 일부 행태로 치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국 임명을 찬성하는 속에서도 소위 지각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따위 얘기를 꾸짖기는커녕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정의와 평등까지는 아니더라도, 1센티미터라도 더 나아가는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어도 모자랄 판국에, 제 몫만 챙겨도 된다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논리가 버젓이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자유한국당도 차마 노골적으로 떠들지 못했던 주장을 소위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었다. 진영싸움에 눈이 먼 나머지 사회의 기본가치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과하다 할 수 있겠으나, 히틀러의 나치당 당원 상당수가 진보적 의식의 소유자였다는 역사책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의를 구성하는 기회의 공정은 적절하게 뒷받침되는 결과의 평등이 전제조건인데, 그래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한 달 월급만큼 사교육비를 지출해도 티도 안 날 만큼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는 기회 자체가 불공정하고 그래서 스카이캐슬은 분명 정의가 아닌데, 괜찮다고 하고 있었다. 그 논리라면 초·중·고 학생들의 눈물과 학부모의 한숨, 비정규직과 하청 노사의 아픔, 직장 갑질의 문제, 청년의 절망, 영세 상인의 한숨 등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그 고통의 대부분은 위법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조국 사태 과정에서 판도라 상자를 연 그들이 밉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10대 90으로 갈라지고 고정되는 사회, 그 속에서 나의 소득과 부동산과 주식 늘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진보의 실제가 만든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바란다는 조국과 조국들, 그리고 우리가 10대 90의 울타리 안에 멈춰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정권교체와 사법개혁과 적절한 수준에서의 민주주의는 허락하지만, 10대 90의 현실에 눈 돌리지 말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울타리 안에서 1%가 되고 10%가 되려고 경쟁하면서 울타리를 난공불락의 성체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왜 멈췄을까. 세상을 뒤집겠다는 꿈은 포기하거나 유보했더라도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을 수 있었는데 왜 멈췄을까.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를 앞으로 밀고 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조국과 조국들, 그리고 우리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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