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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철탑에서 … 노동자들의 서글픈 추석나기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 비정규직, 한화에어로스페이스·파리바게뜨 노동자
▲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 15일 오후 녹색병원에서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 지회장은 단식 47일째였던 지난 13일 건강악화로 쓰러져 입원했다. <정택용 사진가>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에 거리와 철탑 위를 지킨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이라고 풍요롭고 안락한 연휴를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가족과 친지를 뒤로한 채 정부와 회사에 직접고용 시정명령과 해고자 복직, 성실교섭,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추석연휴를 보낸 노동자들. <매일노동뉴스>가 15일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식 47일째 쓰러진 김수억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
"노동부가 계속 재벌을 비호한다면 또 결단할 수밖에"


"링거액이 들어가니까 좀 낫네요."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7월29일 고용노동부에 "법원 판결대로 기아자동차에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던 김수억 지회장. 단식 47일째였던 지난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결국 쓰러졌다. 팔다리 마비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김 지회장은 119구급차에 실려 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됐다가 녹색병원으로 옮겨져 이날로 3일째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영양제가 섞인 수액이 몸 안에 들어가면서, 핏기 하나 없던 김 지회장의 낯빛도 조금씩 생기를 찾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병문안을 사양했던 그는 "병상에 앉아 방문객들과 조금씩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단식은 끝났는데 노동부가 '(직접고용 시정명령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각급 법원과 대법원은 현대·기아차 직접생산공정뿐 아니라 간접생산공정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김 지회장이 "법원 판결대로"를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노동부는 법원이 아닌 검찰 기준을 따르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7월 박한우 기아차 사장을 기소하면서 직접생산공정만 불법파견으로 봤다. 이달 3일 임서정 노동부 차관으로부터 "노동부는 검찰 수사지휘를 받기 때문에 검찰 기소의견을 고려해 판단한다"는 답변을 들은 현대·기아차 6개 공장 비정규직지회장들과 간부들은 이튿날부터 추가로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는 비정규직들이 어떤 마음으로 집단 단식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또다시 저처럼 40일, 50일 단식하다 쓰러지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없도록 법원 판결대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노동부가 계속 재벌을 비호한다면, 저 또한 몸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결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15일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활동가들이 한국지엠 부평공장 앞 농성장을 방문했다. 15일로 한국지엠 비정규 노동자 이영수씨의 철탑농성은 22일, 해고자들의 단식농성은 21일째 진행되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

철탑 위에서 추석 맞은 한국지엠 비정규직 이영수씨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풀릴 문제"


"철탑 위에 있어서인지 보름달은 잘 봤습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앞 철탑 위에서 22일째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이영수씨의 얘기다.

고공농성이란 극한 투쟁을 하는 노동자가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것은 너무 감성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달은 밝았지만 소원을 빌지는 않았다"며 "추석이 지나고 우리 투쟁에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5년 군산공장과 지난해 부평공장에서 해고된 조합원 46명의 복직과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 철탑에 올랐다. 다음날 해고자 46명 중 25명이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자들의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이날 현재 6명이 21일째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이씨를 포함한 해고자들은 한시적 1교대로 운영되는 부평 2공장을 2교대로 돌려 해고자 46명을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46명을 채용할 여력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노동자들은 올해 설에 이어 추석에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집을 찾아가 노사관계 정상화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삼성테크윈지회 추석에도 회장 찾아 삼만리
"김승연 회장님, 얼굴 좀 봅시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디펜스) 조합원들의 추석 풍경은 올해 설과 다를 바 없었다. 2월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승연 회장 집 앞에서 시위했던 지회 조합원들은 추석연휴에도 같은 자리에서 "회장님 얼굴 좀 봅시다"를 외쳤다.

지회는 김승연 회장이 나서 꼬일 대로 꼬인 노사관계를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한화그룹은 삼성에서 시작한 '무노조 경영'과 '금속노조 파괴 공작'까지 인수한 듯했다. 지회는 4년째 기본적인 노조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2017년 임금·단체협약도 타결하지 못했다. 2018년 임금교섭과 2019년 임단협까지 3년치 교섭이 밀려 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 중재로 지난달 교섭이 재개됐다. 지회는 "성실교섭을 하자"는 의미로 교섭기간 상경투쟁을 중단하고, 한화그룹과 한화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과 63빌딩, 김승연 회장 집 앞에 걸었던 플래카드를 내렸다. 34개 단협 요구안은 13개로 줄였다.

지회는 노조활동 보장과 고용안정방안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합원들이 주목하는 것도 고용안정 관련 조항이다. 2015년 한화로 매각될 당시 노사가 합의한 '5년 고용보장' 유효기간이 종료되는 내년 6월30일을 기점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시 노조와 합의" 조항을 요구하는 지회에 회사가 "인사경영권 침해"라고 맞서면서 교섭은 중단됐다.

권오택 지회 사무장은 "조만간 2018년 교섭에 대한 쟁의조정을 신청할 계획"이라며 "방위산업체라서 교섭력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지만 필요시 생산을 멈추는 쟁의행위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하루빨리 교섭을 매듭짓고, 내년 설에는 조상님과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지회 "회사에 뒤통수 그만 맞고 싶네요"

회사의 '배째라식' 약속 불이행으로 거리농성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다. 임종린 지회장은 추석 당일인 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패션5' 앞에 마련한 '승합차 사무실'에서 조합원들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봤다. 임 지회장은 "부침개와 전을 사서 간부들과 나눠 먹었다"며 "명절 분위기는 냈다"고 했다. 지회는 지난달 13일부터 "노조사무실 제공 약속을 지키라"며 SPC그룹이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인 패션5 앞에서 농성 중이다.

파리바게뜨 본사인 파리크라상과 지회는 6월12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시간 배분과 노조사무실 제공에 합의했다. 지회는 133일간 진행한 천막농성을 중단했다. 회사가 핑계를 대며 노조사무실을 내주지 않으면서 지회는 두 달 만에 농성을 재개했다.

노사는 '회사가 제시한 보증금과 임대료 수준을 넘지 않되 장소는 노조가 원하는 곳'에 사무실을 두기로 약속했다. 회사는 그러나 "평수가 너무 크다"거나 "다른 노조(한국노총 소속)보다 사무실이 크면 안 된다" 등 각종 이유를 들며 지회가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구한 사무실 임대계약을 미뤘다. 결국 회사가 있는 경기도 성남 야탑동에 사무실을 구하라고 요구했다. 그랬던 회사는 이달 11일 지회에 "신도림에 있는 지역사업본부(옛 협력사) 사무실과 노조사무실을 같이 사용하라"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임 지회장은 "조합원들의 접근성을 생각해 신도림까지는 양보할 생각이 있었는데, 갑자기 또 지역사업본부 사무실과 공간을 나눠 쓰라고 한다"며 "노조를 감시하고 상급단체인 화섬식품노조와 떨어뜨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회는 16일 회사와 대화한다. 그는 "회사에 뒤통수를 너무 많이 맞았다"며 "제발 약속한 것들이나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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