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자기네들 편리한 대로 해석한 거예요. 대법원 판결은 1천500명 전체를 직접고용하라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꼼수 부리는 거잖아요.”

9일 오후 경기도 성남 분당구 서울톨게이트 앞. 파란 천막 아래 앉아 있던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해고 요금수납원 ㄱ씨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이날 한국도로공사가 발표한 ‘대법원 판결 이후 요금수납원 고용안정 방안’ 내용을 듣고서다. 도로공사는 이날 대법원 승소 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 비동의자와 고용단절자 등 최대 499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다. 해고 요금수납원들은 1·2심에서 근로자지위를 다투고 있는 나머지 1천여명의 동료 해고자들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는 해고 요금수납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7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서울톨게이트 인근 도로에서도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위원장 박선복) 조합원 200여명을 비롯한 해고 요금수납원들이 천막농성 중이다. 천막농성장 주변에는 ‘도로공사는 법원 판결 이행하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대자보가 곳곳에 붙어 있다.

조합원 ㄴ씨도 “대법원에서 한 번 이겼는데 똑같은 판결을 반복하라는 것은 세금낭비 아니냐”며 “공기업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옆에서 ㄴ씨 얘기를 듣고 있던 조합원 ㄷ씨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열받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요.”

ㄷ씨는 “농성 과정에서 신경성질환으로 병원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박선복 위원장은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박선복 위원장은 지난 2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서 하던 고공농성을 멈췄다. 당시 이강래 사장은 박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판결받지 않은 요금수납원까지 직접고용하면 도로공사 입장에서는 배임행위가 될 수도 있다”며 “해고 요금수납원 1천500명을 전부 직접고용하기는 힘들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아직도 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기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기분이 나빠요. 직접고용할 경우에는 버스정류장이나 졸음쉼터 환경정비를 맡긴다는 계획도 일방적이고요. 직접고용되면 스마트톨링 도입에 대비한 영상식별 업무같이 현재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부여하는 등 노동자들과 함께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 위원장이 “더 강한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며 한 말이다.

이날 캐노피에서 농성하던 해고 요금수납원 22명 중 6명이 건강 악화로 크레인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와 병원에 이송됐다. 노조 조끼를 입은 조합원이 2명씩 내려올 때마다 밑에서 지켜보는 조합원들은 “고생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라고 외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72일 만에 땅으로 내려온 조합원들은 휘청이는 다리로 아래에 있던 조합원들을 부둥켜 안았다. 멀찍이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조합원은 “에휴, 저 캐노피 계단으로 당당하게 내려와야 하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공농성을 마친 조합원들 머리 위로 추적 추적 비가 떨어졌다.

한편 또 다른 해고 요금수납원 300여명은 이날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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