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퇴임하고 나면 월급을 못 받고 연금을 받잖아요. 수입이 줄어드는 대신 시간은 많이 남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죠. 그런데 막상 퇴임하고 나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수입이 떨어진 건 확실한데 시간이 남지는 않아요.”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조돈문(65·사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 지난달 31일자로 가톨릭대 교수직(사회학)에서 정년퇴임한 지 일주일여가 흘렀다.

강의만 하지 않을 뿐 이런저런 활동과 각종 회의·연구로 바쁘다 보니 퇴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교수 시절부터 왕성하게 활동했던 조 이사장이 갖고 있는 대표직만 무려 5개다. 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과 노회찬재단 이사장,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대표,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이고 서울시정고문단에 속해 있기도 하다.

퇴임한 뒤 새로운 연구나 여행 같은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여의치 않다고 한다. 조 이사장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하지 않으면 계획했던 대로 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한 학기 정도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 학기”라고 표현했다. 제자들과 함께한 강단생활에 여운이 남은 모양이다.

제자들에게 보내는 당부 “세상은 진보한다”

조돈문 이사장이 대학교수가 된 것은 1993년. 마흔을 바라보는 서른아홉에 첫발을 내디뎌 가톨릭대에서만 강의를 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논문작성과 연구활동, 노동·사회단체 활동에 힘을 쏟았다. 주위 사람들이 그가 교수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쉼 없이 활동했다.

낮에는 회의와 집회에 참석하고 밤에는 논문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람을 만나 술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 여유도 없었다. 이런저런 회의나 기자회견이 끝나고 식사를 할 때쯤에야 사람들과 마주했다.

그는 “논문 데드라인을 앞두고 사회운동과 관련해 갑작스럽게 요청이 오면 논문을 제쳐 놓고 달려 나갔다”며 “언제나 영순위는 운동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고 했다. 회의나 집회·기자회견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었다.

2012년부터는 매년 1학년 1학기에 하는 사회학개론 강의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어린 학생들과 사회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처음 대학에 부임했을 때와 비교하면 의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세상이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갔는데 학생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비정규직 운동과 노동계급 운동에 투신한 스승을 나이 어린 학생들은 뭔가 멀리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스승은 제자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라고 당부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서로 농담도 하게 되고 별 얘기 다하는 사이가 되는데요. 자기가 선 자리에서 사회를 바라보되, 전체 사회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도 보라고 말합니다. 사회에 대한 시각을 잃지 말고 현상을 만들어 낸 구조적인 면을 보라고요.”

조 이사장을 거쳐간 학생 중 이른바 ‘노동판’에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노동 관련 연구소 요직에 있는 제자도 있고, 여성노동운동을 하거나 노동인권 교육을 하는 제자도 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제자를 만나는 것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다.

“제자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세상이 꾸준히 진보한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버리지 마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제가 인디언 기우제 비유를 좋아합니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인데,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잖아요. 포기하지 않으면 변화를 보게 됩니다.”

“대중적인 글 쓰면서 카메라 들고 여행하고파”

조 이사장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전문적인 학술논문과 피 말리는 마감시간이 있는 청탁원고는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물론 연구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평생 노동계급과 비정규직을 연구한 그는 최근 성평등과 여성노동에 주목하고 있다. 성평등·여성노동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지금까지 쓴 글보다 대중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글이 전문연구자나 정책입안자 또는 활동가 중에서 정책 전문역량이 있는 이들이 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보다 쉬운 글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계획이다. “학술논문과 일반에세이 중간 정도의 글”이라고 했다.

조 이사장이 또 하나 바라는 것은 카메라를 메고 떠나는 출사여행이다.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실컷 보면서 말이다. 그에게 다큐를 가장 잘 만드는 곳은 영국의 BBC다. 한때 노숙하는 한이 있더라도 영국에 3개월 정도 머무르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누가 영국에 안 가도 BBC를 실컷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해서 계획을 바꿨다”며 웃었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꿈은 '현재 진행형'

조 이사장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세운 두 가지 계획을 당장 실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저서 집필을 포함해 밀린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을 맡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한다. “센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것이 조 이사장 생각이다.

6411번 버스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만든 노회찬재단 이사장 임기도 남아 있다. 재단이 올해 1월 출범식을 한 만큼 그가 할 일이 적지 않다. 삼성그룹에 노조가 8개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대표로서 전략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고 노동계급을 형성하겠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조 이사장이 펴낸 <함께 잘사는 나라 스웨덴 : 노동과 자본, 상생의 길을 찾다>(사회평론아카데미)는 그의 꿈과 맞닿아 있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나라 중 가장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었다는 스웨덴.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통합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스웨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계급 형성에 기초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 이사장 분석이다.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식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연구와 실천이다.

“지식인은 사회로부터 평균 이상의 보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서도 평균 이상의 기여를 해야죠. 연구자로서 논문 한 편을 쓰더라도 목숨을 걸고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조 이사장은 "노동계급을 연구하면서 노동계급을 위한 실천을 하지 않으면 (성매매 여성을 돌봐주는 척하면서 착취하는) 집창촌 포주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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