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9.18 수 08:00
상단여백
HOME 노동이슈 사건ㆍ사고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들 "고인 명예회복 너무 힘들다" 한목소리유가족모임·과로사공동대책위 워크숍에서 밝혀 … 경험 공유하고 대응방안 모색
▲ 과로사OUT공대위와 한국과로사·과로자살자 유가족모임 주최로 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 경험과 과제 워크숍에서 유가족 배고은씨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동생이 숨지고 한참 지난 뒤 회사는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야근을 시키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과를 받은 유가족은 더 이상 그 회사 내부 일에 개입할 수 없게 됐고요. 그런데 최근 야근이 계속되고 퇴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내부 직원들의 조직된 활동이 없다 보니 동생 죽음으로도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겁니다."

인터넷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며 괴로워하다 지난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웹디자이너 장민순(사망당시 36세)씨의 언니 장향미씨의 증언이다. 장씨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과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로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 경험과 과제 워크숍'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유가족·동료 워크숍에서 개별 대응 경험 공유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가족·동료는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운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찰 조사를 받고,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죽음의 증거를 찾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진실게임을 한다. 이날 워크숍은 준비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닥친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개별 대응 경험을 털어놓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공동 정책과제를 모색했다.

장민순씨는 2015년부터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근무한 32개월 중 3.7%를 연장근로 한도를 넘겨 일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한 날도 전체 출근일의 17.9%나 됐다. 그는 2017년 12월23일 가족에게 "내가 나서 야근 관행을 바꾸겠다"고 말한 뒤 열흘이 지난 2018년 1월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실 죽음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장씨의 언니는 2017년 12월 초 동생이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괴롭힘을 토로하자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진정했다. 하지만 노동부 관계자로부터 "올해 근로감독 물량이 끝났다"는 답변을 들었다.

장향미씨는 동생이 죽은 직후부터 시민사회·민주노총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에스티유니타스는 동생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야근 관행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장씨는 이날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라는 괴물을 드러내고 동생 죽음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잉태된 것이라는 이슈제기는 했지만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며 "노동관계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엄격한 근로감독과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고 과로사를 방지하는 관련법이 제정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 지키지 못한 죄책감, 산재입증 과정에서 또 상처받아"

배고은씨의 형부는 업무스트레스와 희망퇴직 압박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호사인 배씨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배씨와 같은 이들은 2017년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을 꾸려 아픔을 나누고 산업재해 신청을 돕고 있다. 그는 과로자살을 입증해 나가는 과정에서 유가족이 마주하는 여러 고통을 호소했다. 배씨는 "유가족은 죽음의 원인이 회사에 있다는 입증을 스스로 해야 하고, 경찰조사 과정에서 강압적 태도에 놀라고, 홀로 가족 죽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고, 오랜 시간 기다린 산재 결과가 나와도 또다시 행정소송에 휘말릴까 두려움에 떨고, 가족 죽음을 방치했다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놓인다"며 "유가족들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고,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입을 모아 토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가족이 다른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정부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의 대응 경험을 공유했다. 이민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이 연이은 간호사 죽음 사례를, 허소연 전국집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당사자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노조가 실력을 갖춰야 과로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아시아직업 및 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는 10월28일부터 29일까지 우리나라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정남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