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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모인 금융노동자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근래 쉽게 보지 못한 규모다. 일과 후 집회에 무려 4천여 조합원이 모였다. 지난 3일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공동위원장 김정한·이진용)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예정된 오후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무대 앞 일부를 제외하고 뒷자리 대부분은 휑한 것이, 부슬부슬 비까지 내려 쓸쓸하기까지 했다. “회사측 압박이 심한가요” 하고 넌지시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결연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비도 오고 퇴근시간도 있으니까요.” 그의 말대로 오후 7시가 넘자 조합원들이 끊임없이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인파는 세종대왕 동상을 넘어 광장을 덮었다. 4천명이 넘었다.

“KEB하나은행노조 행보, 역풍 직면” “KEB하나은행노조에 비난 여론↑”…. 언론에서 내놓은 제목들이다. 신뢰할 수 없는 거짓 뉴스다. 노동조합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언론이 아닌가. 기사내용을 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약속을 이행하라.” 조합원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2018년 5월 합의한 ‘노사 특별합의문’을 비롯한 여러 노사합의 이행이다. 인사복지제도 통합 후 실시하기로 한 승진인사, 저임금직군의 일반정규직 전환 등등 회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진실이다. 무려 4천여 조합원이 비를 맞으며 끝까지 집회를 지킨 이유다.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금융) 회장은 올해 상반기에만 20여억원의 보수를 챙겨 갔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한 노조간부의 노기 어린 비판이다. 은행과 계열사의 대표라고는 하지만 조합원 평균임금의 수십 배에 이르는 급여 수준이다. 정말이지 ‘살찐 고양이법’을 만들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성과가 어디 자기 혼자서 만든 것이던가. 노동자와 조합원이 땀 흘려 일한 결과라는 사실. 그래서 조합원들은 “노동자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3년 전인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 매주 열린 ‘촛불집회’에 참으로 많은 금융노동자들이 모였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그 이후로 광화문광장에서 이런 규모의 금융노동자들이 모인 집회는 없었다.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이들의 외침에 다시 놀란다. 3년 전 그날과 오늘의 주장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조리와 불합리를 깨부수자’던 그 목소리 그대로다. 직접적으로는 사용자를 규탄했지만, 그를 둘러싼 금융제도와 정부가 오히려 진정한 대상인 듯했다.

“3년간 적지 않은 분야에서 적폐청산이 진행됐지만, 유독 금융권만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은행노동자의 말이다. “관치를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오죽 실망했으면 이런 말까지 할까.

예전보다 더 공고해진 독과점이 금융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노사관계는 더 후퇴한 곳도 많다. 그래서 실망은 더 크게 다가온다. 돌아보면 대형은행에서 채용비리 수사가 있었지만 일부에 그쳤을 뿐 몇몇 ‘온상’들은 여전히 은행을 지배하고 있다. ‘노동존중과는 무관한’ 정체불명의 ‘낙하산’이 공공·금융기관에 수시로 떨어진다. 노동자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고발은 끊이지 않는다. 이것뿐이랴. 금융관료들의 든든한 쌈짓돈 역할을 하는 일부 ‘신이 숨겨 놓은 금융기관’의 행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을 또 다른 수탈을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여긴다. 이런 구태에 금융노동자들이 어찌 더 참을 수 있겠는가. 불안한 미래를 감수하고 통합에 동참한 KEB하나은행 조합원들이다. 아마도 이들이 회사와 정부에 갖는 배신감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이를 철석같이 믿었기에 3년 전 2천만 노동자와 시민이 광장에 모였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이 날 모인 금융노동자들은 ‘정치가 과연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바꿨는가’ 하고 다시 묻고 있었다. ‘도대체 정부는 금융과 금융노동자를 위해 뭘 했느냐’고, 나아가 ‘과연 알기나 하는가?’ ‘관심이 있기나 한가?’라고.

이날의 모습이 새삼 새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집회가 한 금융기관 노사 간 단순한 갈등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전체 금융노동자들의 삶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통계상 우리사회 임금 사다리 최상위에 있다고 평가되는 금융노동자들조차 광장에 나섰다는 데 있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 노동현장, 역사의 큰 변화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금융노동자들이 큰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물론 지금도 많은 수의 금융노동자들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있음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와 노동현장의 건강 정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나섰다. 오늘은 KEB하나은행의 조합원들만이지만, 내일은 또 다른 노동자들이 광장을 메울지 모른다.

이들의 목소리에 지금 당장 귀 기울여야 한다. 금융노동자들의 목소리 말이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언론과 소식통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이라면 예전과 다른 게 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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