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단속 나왔어. 위험해, 뛰어.” 마치 영화의 추격 장면에나 나올 법한 대사지만 이건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바로 이주노동자 이야기다.

지난해 8월22일 한 건설현장에서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추락사했다. 미얀마 국적 노동자 딴저테이씨다. 그는 법무부 산하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단속반이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창밖으로 떨어져 숨졌다. 딴저테이씨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힘들게 작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첫술을 뜨던 순간 단속반이 식당에 들이닥쳤고, 들이닥친 이들은 곧바로 출입문을 걸어 잠갔다. 식당에 딸린 창고를 향해 뛰던 동료는 딴저테이씨를 바라봤고, 앞서 뛰어내린 4명에 이어 ‘살기 위해’ 창틀에 올랐다. 단속반은 그가 뛰지 못하게 다리를 붙잡았고, 중심을 잃은 딴저테이씨는 그대로 창문 밑 얕은 평지 너머 공사 현장에 떨어졌다.

사람이 추락했다. 상식적이라면 단속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상관없이 단속은 계속됐다. 결국 사고가 있던 날 미등록 이주노동자 가운데 36명이 붙잡혔고, 미얀마 노동자 9명 가운데 5명이 본국에 보내졌다. 추락 20~30분이 지나고 나서야 구급차가 왔고 딴저테이씨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17일간 뇌사상태에 있던 그는 9월8일 자신의 나라가 아닌 낯선 한국 땅의 차가운 병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발견 즉시 법무부 직원이 119에 신고했다고 주장하고, 딴저테이씨 추락사 이후에도 “불법체류 외국인이 국민 일자리를 잠식한다”며 건설업을 중심으로 단속활동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2018년 7월)에 따르면 체류외국인은 241만여명이고 이 중 취업비자를 가진 사람들은 비전문취업(E-9) 27만여명, 방문취업(H-2) 23만여명으로 총 50만여명이다. 여기에 더해 ‘불법체류자’로 일컫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규모는 33만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불법체류자’란 용어는 국제기구·외국매체에선 이미 사용을 금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법무부 등 정부부처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주요 제도인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로 300인 미만 제조업·건설업·어업·농축산업과 일부 서비스업에 적용된다. 행정절차일 뿐인 ‘미등록’ 문제를 두고 이주노동자들의 존재 자체를 불법 취급해 발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문제는 실제 심각하다. 2017년 9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이주노동자 재해현황을 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천798명이고 이 중 사망자만 511명이나 됐다. 산재 발생률도 내국인보다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의 경우 노동조건이 열악한 영세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영세 사업장은 산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이주노동자는 산재를 예방하는 권리 측면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최소한 자신의 건강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업장이라면 위험에서 벗어나 이동할 수 있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이들의 발목을 잡아 사업장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위험을 예상해도 참고 견디며 일할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근로복지공단도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민의 경우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안내는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존재 자체가 드러나면 추방을 당하기 때문에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 또한 자기 자신을 은폐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알 권리 역시 박탈당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그 조차도 어렵다. 산재를 신청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고 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데 보호 제도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미등록이라는 사각지대가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장에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곳, 안전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고용허가제인가?” 1980년대 후반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3D 업종으로 불리는 열악한 사업장에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장시간·저임금을 유지하며 기업의 필요를 해소하고자 등장한 산업연수생제부터 지금의 고용허가제까지 과연 누가 이 제도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걸까. 딴저테이씨 사망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합법과 불법을 떠나 이주노동자 역시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하는 곳이 어디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권리이며,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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