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3시. 한국지엠 부평공장 삼거리 앞 신호대기 차량 운전자 시선이 오른편을 향했다. 정문 맞은편 도로에서 파란불에 자전거로 달려오던 야간조 출근노동자들은 위쪽을 쳐다보며 공장 안으로 사라졌다. 이들의 시선 끝에는 9미터 높이 철재구조물 위에 선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이영수(45)씨가 있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지회장 황호인) 조합원인 이씨는 지난달 25일 새벽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2015년 군산공장과 지난해 부평공장에서 해고된 조합원 46명의 복직과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철탑에 올랐다. 이튿날 해고자 46명 중 25명이 단식을 시작했다.

이날로 고공농성 6일째였던 이씨는 "이제야 윗생활이 좀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처음 이삼일은 정신없이 보냈다고 한다. 대각선으로 누워야 겨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서 말이다.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방'인지라 나름 '인테리어'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단다.

철탑은 조립식 비계 다섯 단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공장 사장실이 위치한 본관 3층 앞에 철탑을 설치해 매일 사장실을 바라볼 계획이었는데, 여의치 않아 공장 정문 설치로 방향을 틀었다.

정문 앞에 자리 잡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가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자기만의 표현이다.

 

▲ 배혜정 기자

"비정규직 해고자 46명 복직, 지금이 기회"

부평2공장에서 차체용접을 하던 이씨는 지난해 12월31일 2공장 1교대제 전환 과정에서 해고됐다. 같은해 7월 말 회사와 정규직노조(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2공장 가동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교대제를 주간 1교대제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201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1교대제를 운영한 뒤 다시 2교대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1교대제 전환으로 잉여인력이 된 정규직은 전환배치됐다. 반면 비정규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무급 순환휴직 아니면 해고. 비정규직들이 무급 순환휴직을 거부하자 업체들은 스스로 폐업해 버렸다. 새로 들어온 업체들은 무급휴직에 동의한 노동자들만 고용을 승계했다. 이렇게 일자리를 잃은 해고자가 150여명이다.

'비정규직 해고' 바람은 다른 곳에서도 불었다. 지난해 말 인천KD(Knock Down, 자동차부품포장 수출센터)가 폐쇄됐다. 올해 5월에는 차량 정비용 부품을 공급하는 인천부품물류센터가 문을 닫았다. 이때도 정규직은 전환배치되고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회는 부평2공장 2교대제 전환을 앞둔 지금을 해고자 46명이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2교대제로 다시 전환하려면 700여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영수씨는 "한국지엠이 구조조정을 할 때마다 매번 가장 먼저 희생된 비정규직들이 가장 먼저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필요인력을 충원해야 할 지금이 복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전에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비정규직 복직을 요구하면 분위기가 싸늘했어요. '정규직도 잘리는 판에 무슨 비정규직 복직이냐'는 거죠.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필요인력 충원이라는 명분도 있고, 기존 정규직 대기인력을 배치하더라도 비정규직 46명을 복직시킬 여력은 충분하니까요. 정규직들도 '지금이 아니면 이후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한국지엠만 결단하면 되는 일입니다."
이씨는 "최단기 농성 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몸집 줄이는' 한국지엠
필요인력 충원 제대로 할까


철탑 아래에는 천막농성장이 있다. 단식 노동자들이 책을 읽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마의 구간'이라는 단식 3~4일차를 지나서인지 단식자들의 얼굴이 다소 편안해 보였다. 부평2공장 도장부에서 일했다는 임건수(47)씨는 이씨와 마찬가지로 무급 순환휴직을 거부하다 해고됐다. 임씨는 "한국지엠에 혈세 8천100억원이 지원됐는데, 회사가 그 돈을 가지고 투기를 한 게 아니라면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나 임씨의 말처럼 교대제 전환을 앞둔 지금이 해고자 복직의 적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지속적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 해고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최근 한국지엠은 정규직노조에 1공장과 2공장 편성효율을 높이고, 시간당 생산대수(JPH)를 늘리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JPH 24대에 60% 초반 편성효율로 운영되는 2공장을 JPH 32대, 편성효율 85% 이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70% 중반인 1공장 편성효율도 88%까지 끌어올리자며 노조에 부서협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편성효율은 생산에 주어진 시간 중 노동자들이 실제 일한 시간 비율을 말한다. 편성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노동강도가 강화된다는 뜻이다.

황호인 지회장은 "회사는 1공장 각 직당 두 명씩을 빼서 128명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라며 "이미 명단이 작성돼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황 지회장은 "회사가 (정규직노조에) 효율성과 생산성을 어떻게 올릴지 논의하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며 "모든 부서협의가 중단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축소'와 '구조조정'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지엠이 부평2공장에 필요인력을 제대로 채울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2교대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공정이 아예 없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불법파견 논란 때문이다. 부평공장은 지난해 2월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지회는 "불법파견 논란이 부담스러운 회사가 비정규직이 투입되는 공정을 없애고, 기존 정규직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황 지회장은 "복잡한 상황 속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이라며 "회사가 불법파견 문제를 인정하고 있다면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정상화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배혜정 기자

8번째 불법파견 판결에도 한국지엠 '모르쇠'

사실 해고자 46명을 포함해 부평·군산·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미 법원에서 여덟 차례나 불법파견을 확인받았다. 군산·부평공장 노동자들은 지난해 2월 인천지법에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이끌어 냈다. 11월 서울고법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15년 8월 군산공장 인소싱으로 해고된 이완규(40)씨도 이 중 한 명이다.

"한국지엠이 잘하는 게 하나 있어요. 시간을 질질 끌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거죠. 누가 봐도 불법파견인데, 회사는 대법원 판결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한 10년 버티면 될까요? 노동자들도 그게 무서워서 못 싸우는 거예요. 시간은 노동자 편이 아니라 사용자 편인 거죠. 비정규직 수백 명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해도 벌금 700만원만 내면 끝입니다. 어느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사내하청 847명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닉 라일리 전 사장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았다. 선고액은 고작 700만원이었다. 4년 넘는 복직투쟁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가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어린 두 자녀 때문이다. 4세와 8세 남매를 둔 이씨는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세상에서 딸과 아들이 사는 걸 원치 않는다"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파견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없어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평2공장 해고자 한원덕(49)씨는 "끝장날 때까지 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번에 비정규직으로라도 (회사에) 들어가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 배혜정 기자

비정규직 투쟁에 힘 보태는 정규직들
"정규직·비정규직 함께 투쟁하자"


비정규직의 투쟁에 정규직도 힘을 모으고 있다. 부평공장 정규직 활동가들의 공동활동기구 '함께살자 공동행동' 소속인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 대의원 차준녕(54)씨는 거의 매일 농성장을 찾는다.

"2015년 군산공장에서 2교대제를 1교대제로 바꿀 때도 비정규직이 가장 먼저 쫓겨났어요. 당시 비정규직을 앞세우면 그 후과가 정규직에게 올 거라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결국 공장폐쇄로 이어졌죠. 부평2공장 2교대제 전환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올해 지부 단체교섭 별도요구안에 '부평2공장 1교대 전환·전환배치·계약해지로 해고된 비정규직을 부평2공장 2교대 시점에 전원복직'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회사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현장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이날 '해고자 전원복직 1일 동조단식'을 한 전병기(56)씨는 "저 위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 밥 굶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고 말했다.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복직하고 회사도 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46명 일자리도 못 만들면 사장이 나가는 게 맞지 않나요?" 카허 카젬 사장의 뼈를 때리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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