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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엄격하고 재벌에게 관대한 법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8월21일 검찰이 국회 앞 집회에서 안전펜스를 훼손하고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간부에게 징역 4년형을 구형했다. 선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으나, 검찰의 이러한 구형은 노동자 집회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을 보여 준다. 검찰은 “이 사건의 중대성과 폭력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중대’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집회는 국회가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연장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집회였다.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과 시간 주권의 훼손이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인데, 검찰에게는 그것보다 안전펜스가 훼손된 것이 더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중대성’에 대한 검찰의 이 언급은 검찰이 무엇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8월 초 검찰은 비정규 노동자 14명을 기소했다. 특수건조물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일반교통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 무시무시한 죄명들이 나열돼 있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을 점거하고, 관광객이 자유스럽게 오가는 청와대 앞에서 손피켓을 들었다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런 행위를 한 이유는 수천 명을 불법파견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한 재벌 총수들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고, 고용노동부는 시정명령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용균씨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범죄자들을 처벌하거나 기소하지 않는 것과 그에 항의하는 것 중에 도대체 무엇이 더 잘못된 행위인가.

노동자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사법부가 재벌들에게는 얼마나 관대한가. 지난 22일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현대자동차 임직원 4명이 1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들은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에 노조파괴를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으며 많은 노동자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런데 법원은 ‘이들이 대체적으로 반성하고 있고 동종 전과가 없는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한다. 협력업체의 노조를 파괴하려고 재벌이 직접 나서서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고, 개인의 일탈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반성’과 ‘동종전과 없음’이 낮은 처벌의 근거가 되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보여 주는 판결도 있다. 같은달 22일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의 사망에 대해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 은성PSD의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서울메트로 대표는 벌금 1천만원, 하청업체인 은성PSD 법인은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하청업체 대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구속을 면하게 된 근거는 “비용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낮은 처벌의 근거로 삼는 그 판결 때문에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고 노동자의 생명은 계속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사법부는 국회 앞에서 경찰의 안전펜스를 훼손하는 것을 ‘폭력’이라는 범죄로 여기지만, 검찰과 경찰이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바로 그 국회가 노동자들의 삶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이 더 심각한 폭력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검찰청 민원실에 주저앉아 피켓을 드는 것은 폭력행위처벌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간주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이 그 항의의 원인제공자라는 점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협력업체의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원청이 나서는 것은 헌법의 단결권을 부정하는 행위지만 사법부는 이것을 기업의 경영행위로 간주한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기업의 행위도 ‘사회적 분위기 탓’을 하면서, 사회적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사법부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폭력인가.

한국 사법부의 가치는 거꾸로 서 있다. 노동자의 삶이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존중하며, 막무가내 이윤추구로 인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정치행위 혹은 경영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이 목소리를 낼 때는 그 행위를 문제 삼아 불법으로 몰아넣는다. 거꾸로 된 이 인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사법개혁은 ‘폭력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 운운하며 노동자들에게 엄포를 놓는 것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제대로 된 사법개혁은 재벌에게는 관대하고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는 엄격한 사법부의 왜곡된 인식을 바꾸는 데에서 시작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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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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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ㅏㅣ 2019-08-29 08:32:05

    동감.. 일도 안하는 국회좀 부쉈다고 그게 무슨 죄가 됩니까? 어차피 쓰지도 않는 물건을 부수는게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죄가 됩니까? 이걸 노동자이니까 죄가 된다고 덮어씌우는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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