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5년도 더 됐다. 2003년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노조가 조직돼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니 벌써 그렇게 됐다. 그동안 목이 터져라 외쳤다. 원청 현대차가 곧바로 사용자라고 주장했다가 받아 주지 않자 불법파견의 사용사업주라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그리고 교섭장에서 하고 또 했다. 2007년 6월1일 이 나라는 최초로 이러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의 요청에 응답했다. 아산공장 사내하청 김준규 등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사건에 관해서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최초 판결이었다. 이렇게 법원이 파견근로라고 판단했으니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사용자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으로 수사하고 기소해서 처벌받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2010년 7월 울산공장 최병승의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라는 취지로 파기환송되고서도 하지 않았다. 2010년 말 약 2천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현대차에 직접고용하라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그 뒤에도 비정규 노동자 제소가 이어졌으며, 기아차에서도 소송이 제기됐는데 법원에서 차례로 파견근로라며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이 선고돼 왔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 현대차·기아차의 사용자를 파견법 위반으로 수사·기소해 처벌받도록 하거나 불법파견 중단 및 직접고용의 시정명령을 하는 데 노동부와 검찰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미 2015년 2월 아산공장 사건에서 의장공장뿐만 아니라 차체공장·엔진공장 등 이른바 서브공정까지도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고 대법원이 근로자지위확인 사건에서 확정판결했음에도 그랬다. 변명은 구구절절했다.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이 어떻다며 제법 학술적인 태도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서 파견 판단이 쉽지 않다고 주저하고,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아직 법원의 확정판결이 아니라고 소극적이더니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자 컨베이어라인의 직접공정이 아닌 간접공정은 어렵다고 변명해 왔다. 지난 7월9일 파견법 위반으로 수원지검이 박한우 기아차 사장을 불구속기소한 것 말고는 현대차·기아차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사용을 기소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한 지 4년 만에 이렇게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구 등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고, 직접생산공정이 아닌 간접공정이라는 출고·물류 등은 파견근로로 단정할 수 없다며 불기소처분했다. 이것 말고는 하지 않았다. 파견법 등 이 나라의 법은 노동부와 검찰을 단순히 법원의 판결을 집행하는 부서로 규정하지 않았다. 파견법 위반의 혐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기소하라고 그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하지 않았다. 스스로 파견을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라면 적어도 2007년 6월 현대차의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는 법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적극 행사해야 했다. 그랬다면 벌써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형태로 자행돼 온 근로자파견은 근절됐을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나는 기자회견장에서 했다.

2. 지난 22일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수출용 자동차 탁송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견근로를 한 것이라며 현대차가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선적부두 근처로 운송(탁송)하는 업무를 수행하던 사내하청업체 무진기업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그동안 재판에서 현대차는 원고들의 업무가 자동차 직접생산공정이 아니라 이를 보조하거나 지원하는 간접공정일 뿐만 아니라, 특히 도급업무인 운송업무라서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선적부두 근처로 운송하는 탁송업무에 종사하는 자들이라서 파견근로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던 것인데, 재판부는 현대차에 파견근로를 했던 것이라며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의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 생산·조립공정과 그 서브공정을 넘어 물류·운송까지도 파견근로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자동차를 넘어 현대차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근로까지도 폭넓게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진기업 노동자들이 처음 사무실에 찾아와서 상담했던 것이 2016년 초였다. 그동안 처음 소송에 참여했던 많은 원고들이 회사와 합의하고서 소를 취하하는 바람에 이번에 28명이 남아 판결을 받게 됐다. 기자회견장에 여럿이 나와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고생했다는 말 대신에 위와 같은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변호사였던 것이다.

3.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무척 수척해 보였다. “법원이 판단한 기준대로 노동부가 기아차에 불법파견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하라”고 요구하며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노동부가 다음달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뤄지는 직접생산공정에 대해서만 시정명령을 할 방침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 지회장이 단식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위 수원지검이 한 대로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관계자는 “검찰이 현대차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 기준을 따라 판정한 것으로 안다. 검찰의 지휘·명령에 따라 우리가 당사자 확정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공무원이 확정되지 않은 판결을 기준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그야말로 법원의 확정판결을 집행하는 것으로 노동부를 규정짓는 관계자의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노동부에 이 나라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기대해 왔던 것이니, 참담할 지경이다. 도대체 법이 부여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소극적인 검찰의 처분에 따르겠다는 것 말고는 없다. 이대로라면 김수억 지회장의 요구에 따라 노동부가 기아차·현대차에 전면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고 시정명령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되지 않는다.

4.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이 난 직접생산공정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직접생산공정이라며 파견근로라고 판결하면 간접생산공정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간접생산공정이 파견근로라고 판결이 나오면 생산공정이 아닌 물류라고 주장했고, 물류도 파견근로라고 판결하자 그중 운송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인데, 그마저도 파견근로라고 이번에 서울중앙지법이 판결한 것이니, 더는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처럼 현대차는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항소·상고해서 다툴 것이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 모두가 파견근로라서 파견법 위반이라고 직접고용하라고 판결을 해도, 현대차는 그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비정규 노동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끝내 인정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사용자로서 보다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으니 자본의 셈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파견법 등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취하고 있으니 도대체가 사용자 현대차의 파견법 위반을 시정하는 법적 조치는 이 나라에서 기대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 지난 15년간 현대차·기아차에서 파견법의 집행을 지켜보노라면, 자본과 권력은 한통속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5. 현대차·기아차, 그리고 이 나라의 많은 사업장에서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파견을 근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법대로 하면 된다. 법원의 확정판결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자신을 규정짓지 말고, 법이 부여한 대로의 권한을 행사해서 수사하고 기소하고 시정명령하면 된다. 노동자가 확정판결을 받아서 찾아가야 마지못해 사용자를 수사·기소하고 시정명령하는 국기기관을,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위한 노동법 집행기관으로 규정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법이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규정했음에도 사용자를 위해 소극적으로 행사한다면, 아무리 그럴듯하게 변명해도 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할 국가기관으로서 법에 대한 배신이고 직무유기다. 이 나라에서 오늘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은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 법대로 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