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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책임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번 칼럼 “상대적 사업 개념”을 읽은 독자라면 노동법이 적용 단위로 삼는 ‘사업’이 개별 기업이나 법인체로 한정되지 않고 법인과 개인, 법인과 법인이 결합되는 사업네트워크 자체도 하나의 사업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여러 명의 사업주가 결합된 네트워크에서는 누가 사용자책임을 지는가 하는 것이다.

법인사업에서는 개별 법인 자체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진다. 법인책임은 자기의 행위에서 비롯된 손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자기책임이다. 하지만 네트워크사업에서 사용자책임은 타인의 행위에서 비롯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부담하는 연대책임의 원리를 따른다.

물론 사업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각 주체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속하는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를 야기한 경우에는 그 주체가 자기책임을 부담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손해의 발생이 각 주체가 통제할 수 있는 자기권한 범위를 벗어나 사업네트워크의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된 경우에는 그 책임을 개별 주체에게만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감독하는 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이 권한과 책임을 조화시킨다는 정의의 원칙에 부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인상돼 가맹점이나 영세 하청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 그 부담을 가맹본부나 원청기업이 분담하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맹점이나 하청은 사업네트워크에 묶여 있어서 그 부담을 처리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한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은 상품 가격을 마음대로 인상할 수가 없으며, 하청은 납품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맹본부로 하여금 가맹비용을 줄이도록 하거나 원청으로 하여금 납품단가를 올리도록 함으로써 가맹점 근로자와 하청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가맹본부와 원청기업이 분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연대책임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여러 명의 사업주 중에서 ‘진짜 사용자’ 한 명만을 특정해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사업주들 가운데 아무나 한 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사업주들끼리 구상권을 통해서 진짜 책임자를 가리면 된다. 이것은 진정한 책임자의 소재를 확인하고 입증하는 책임을 근로자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동원 능력이 더 많은 사업주가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정법에는 연대책임을 인정하는 규정들이 적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도급인의 귀책사유로 인해 수급인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에 도급인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상법은 재벌 총수 등의 업무집행지시자가 제3자에 대해 이사와 함께 연대책임을 지도록 한다. 환경정책기본법은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무과실책임과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법이 연대책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주의 연대책임을 노동법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환경정책기본법 44조를 노동법으로 번안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규정은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과 연대책임을 규정한 조항인데, 이 조항에서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이라는 단어만 ‘노동오염’과 ‘노동훼손’으로 바꾸고 나머지 문장을 그대로 다시 쓰면 이렇게 된다.

“① 노동오염 또는 노동훼손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노동오염 또는 노동훼손의 원인자가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② 노동오염 또는 노동훼손의 원인자가 둘 이상인 경우에 어느 원인자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는 각 원인자가 연대해 배상해야 한다.”

①항의 문장이 무과실책임에 관한 것이다. 즉 노동오염 또는 노동훼손으로 인한 피해 발생에 원인자의 고의나 과실을 묻지 않는다. 원래 자기책임과 과실책임을 대원칙으로 하는 근대 민법체제에서 무과실책임 법리를 도입한 원조는 노동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다. ②항의 문장은 연대책임에 관한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회도 환경과 노동이 결합돼 있는데, 환경법의 규정을 좀 바꿔서 노동법에 갖다 쓰는 것이 뭐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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