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는 조국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문재인 정권 실세들 전체의 문제다. 조국 후보자는 그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문재인 정권의 인사 검증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임명하거나 임명하려고 했던 고위공직자들에 대해 국민의 실망이 컸다. 많은 인사가 도덕적 흠결을 지니고 있었고 수십 억원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패한 부르주아계급 성원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도덕적 흠결이 적고 또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므로 대통령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청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통령의 이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거부 때문에 낙마했다.

지금 와서 보면 조국 후보자는 무능해서 인사 검증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가 검증에 적용한 잣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불법적이지만 않으면 특권을 이용해서 특혜를 누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판단기준을 가졌던 것 같다. 또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과정에서 다소의 불법을 저질렀어도 큰 불법이 아니면 눈감아 줄 수 있다는 판단기준을 지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현재 자신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같이 너그러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지난날 반대 정파에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했다. 그렇게 이중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은 반대 정파가 일제하 친일의 특혜를 누리다가 해방 후 파쇼의 특혜까지 누린 불의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그 정파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 정치적 잣대로 인사문제를 판단했기 때문에 조국 후보자 자신에 대해, 지금 언론에 폭로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파쇼에 반대하고 반일·민주를 앞세우는, 그가 속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과연 정치적으로 정당한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조국 후보자는 지금 참여적 지식인으로서 그 정치세력의 아이콘이 돼 있다. 딱 하나 흠결이 있다면 그가 젊은 시절에 ‘사노맹’에 연루된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친일·파쇼 수구세력은 이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아 왔다. 그들은 “현 정부의 요직 인사 상당수가 사회주의운동 전력이 있는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현 정부 자체가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거나 “문재인 정부가 반일에 몰두하는 것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강한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국 후보자는 이런 색깔공격 정도는 무난하게 극복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수구세력의 그런 판단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도덕성 문제가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런 승부수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그런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나가기도 전에 낙마할지, 필자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필자의 관심은 한때 맹렬한 사회주의자였던 조국 후보자와 그 주변에 있는 사노맹 사람들이 지금은 부르주아 정치의 기수가 돼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이 맹렬하게 혁명운동을 하던 당시 필자는 그들을 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들은 당시 전체 혁명운동 안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분파로, 이념은 사회주의고 전략은 민족민주혁명(NDR)이었다. 그들의 조직은 노태우 정권의 공안탄압으로 지도부가 구속되면서 와해됐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은 이후에도 재건되지 않았다. 최고 지도부 아래에 있던 중간지도부에서 재건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최고 지도부가 석방된 후에 재건을 기도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일제하 공산당 건설 과정과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모두 소련이 붕괴하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했다. 그렇게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하고 체제에 투항한 다음 그들이 추구한 것은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자유민주주의였다. 그래서 이들은 정의당이나 노동당에 가지 않고 민주당에 둥지를 틀었다.

이렇게 부르주아 정당에 둥지를 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들이 추구했던 민족민주혁명(NDR)에서 혁명을 거세하고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에 맞게 그것을 변질시켜 추진하는 것이었다.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이라면 한국 현실에서 무엇보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한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부르주아계급 이해관계와 조응하는 노선으로 채용된 것이 친미·반일 민족주의다. 이 노선의 뿌리는 상해임시정부고, 이 임시정부를 정략적 목적으로 봉대한 것이 친일 지주·자본가계급 정당인 한민당이다. 이렇게 이들은 조선공산당 계승자에서 상해임정과 한민당의 계승자로 환골탈태했다.

그들의 혁명적 민주주의는 어떻게 변질됐는가? 사노맹의 혁명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을 주력군으로 설정했다. 이에 그들은 노동해방문학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노학연대를 실천하며, 노동조합 전국 지도기관을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하고 난 다음 그들은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서 보듯이 ‘노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임금 노예 상태 안에서의 노동인권 신장을 최대강령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부르주아 이념과 강령으로 출세를 도모했다.

조국 후보자가 보여 주는 언행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을 청산하고 배신한 자의 모습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사회주의와 혁명 모두를 청산하고 체제에 투항해 출세했으면서 여전히 사회적 대의를 위해 진보운동을 하는 듯 연출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누리게 해 주는 묘수였다. 하지만 대의와 출세 두 마리 토기를 다 좇을 수는 없다. 조국 후보자의 추락은 그런 헛된 시도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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