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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직무가 ‘청년’은 아니잖아요
▲ 이채은 청년유니온 미디어팀장

취업해서 처음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을 때는 나름 기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회사였지만 경쟁을 뚫고 합격했기에 많은 청년들이 겪는다는 취업난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주변에는 원하는 회사에 떨어져서 함께 펑펑 울었던 친구도 있었고, 집에 눈치가 보여 닥치는 대로 입사원서를 넣던 선배도 있었고, 돈을 많이 주는 회사보다 바로 일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눈을 낮춰 취업한 동기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취업에 성공한 내 주변 지인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막내였다. 이 막내들에게는 각각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개인에게 부여되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었다. “요즘 청년들은 책임감이 없다.”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이기적이다.” “어른 무서운 줄 모른다.”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커피 심부름이나 번거로운 일들을 먼저 나서서 했다. 퇴근시간이 지나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눈치를 보곤 했다. 남들은 때맞춰 다녀오는 휴가도 여름휴가인지 가을휴가인지 모르게 제일 뒤로 밀리기도 한다. 정말 재미없는 상사의 농담에도 맞장구치며 웃을 수밖에 없다. 윗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점심을 먹을 땐 식탁에 꼭 윗사람들의 수저를 놓는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상사의 제안을 거절하면 “요즘 것들은 회식도 안 하려고 하고 집에만 빨리 가고 싶어 해”라며 개인 특성이 아닌 한 세대로 묶여서 한소리를 듣는다. 막내들에게는 호칭도 달라진다. 직급이 아닌 “막내야”라거나 이름으로 불린다. 당사자들은 익숙하고 가장 어리니 어쩔 수 없다며 넘기지만, 막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까.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역할들도 있다. 직급수당으로 청년수당을 줄 것도 아니면서 청년다운 아이디어·기획·열정을 내놓기를 바란다. 회사나 단체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할 때 특히 그것이 디자인이나 동영상 편집 같은 새로운 기술과 밀접하다면 담당이 아님에도 젊다는 이유로 청년에게 맡겨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홍보나 홈페이지 관리도 마찬가지다. 직책이 ‘연구교육주임’이어도 유튜브에 올릴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오라고도 한다. 담당 업무가 아닌데도 젊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다른 팀 회의에 불려 간다. 이런 일들은 일터 규모가 작거나 직무배치가 명확하지 않을수록 발생할 확률이 높다. 청년을 위한다는 사업이나 행사에 청년들을 조직하는 데에도 청년들이 뛰어다닌다. 청년 대중을 조직하는 부담은 청년이, 생색은 다른 사람이 내는 경우가 많다.

나이 자체가 직무가 된 청년들은 그 일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구인구직 사이트 ‘벼룩시장’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대가 회사를 떠나는 가장 주된 이유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31.4%)가 꼽혔다. 자신의 적성을 잘 몰랐기 때문도 있겠지만 당사자 의사와는 별개로 업무가 배치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막내가 어찌 감히 자신의 업무 범위를 조정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적 상황은 회사 규모가 작거나 업무분장이 제대로 안 된 경우에 더 자주 발생한다.

어떤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나 특징이 있을 수는 있다. 그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요즘 것들”이라거나 “이래서 90년대생은 안 돼”라는 등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돼서는 안 된다. 더불어 일터에 적용할 때 편견에 기반한 판단에 따른 업무배치라면 곤란하다. 나이와 위계에 상관없이 업무 협의와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청년이라는 정체성만이 아니라 개인은 온전히 그 사람으로 봐야 한다.

오늘도 일터에서 청년들은 편견을 오롯이 받으면서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노력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동등한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일터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채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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