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를 이유로 유연근로시간제 확대를 요구한 재계가 이번에는 화학물질 관련 규제의 대폭 완화를 정부에 건의했다.

한국경총은 22일 ‘화학물질 규제개선 건의과제’를 기획재정부·환경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석유, 화학, 철강,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업종별 협회와 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27건의 과제를 제시했다. 경총은 “우리나라 화학물질 규제법률이 선진국보다 과도한 수준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제한적이었다”며 “일본 수출규제가 확정됨에 따라 기업 어려움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산업안전보건법을 지목했다. 경총은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의 경우 별도 절차나 문서제출 없이 등록의무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상 정보제공 대상에서 제외된 화학물질이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부 비공개 승인을 받도록 한 현행 제도 폐지도 건의했다.

연간 100킬로그램 이상 제조·수입하는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해야 하는 현행 기준을 연간 1톤 이상으로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화학물질 관련 법에서 규정한 장외영향평가서·위해관리계획서·공정안전보고서·안전성향상계획서 작성제도 통합도 건의안에 포함했다.

재계는 일본과의 수출전쟁을 이유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국가에서 지정 관리하는 화학물질수가 우리나라(1천940종)보다 일본(2천81종)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데, 기업경쟁력 운운하며 규제를 풀어 달라는 몰염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기업경쟁력을 위해 제물로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가 어렵다는 재계의 볼멘소리는 규제완화가 아니라 정부 지원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기업의 무책임과 무능을 정부와 규제 탓으로 돌리지 말고 노력을 약속하고 정부지원을 요구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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