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국 사회가 내외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정부의 정치·경제개혁은 여전히 좌충우돌이고, 외교는 북미 핵협상, 미중 무역전쟁 사이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반기에 쟁점이 될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첫째, 한반도는 20세기 초 발칸반도처럼 될 것인가? 현재 한반도의 실체적 위험은 일본이 아니다. 미국·중국·러시아·북한의 핵전쟁이다. 미국은 8월 초 중거리핵전력조약을 탈퇴한 후 동아시아에 중거리핵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핵미사일 실험과 배치를 늘리고 있다. 얼마 전 미국 국방대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공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투기를 100대 넘게 구매했고, 미국은 중국을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하라고 압박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북한은 최근 한 달 사이 세 차례나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험한 무력시위를 진행 중이다. 자칫 사소한 충돌이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0년대 발칸반도 갈등이 한반도에서 재현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전략은 무엇인가? 맥락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는 전통적 한미일 군사·경제 동맹보다 북한·중국·러시아와의 협력에 마음이 가는 모양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즈음 발표한 경제협력 구상은 그런 포부를 드러낸 것이었다. 올해 광복절 연설에서는 일본을 이기는 남북 평화경제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정부는 북한에는 꽤 넓은 아량을 보이고 있고, 반대로 일본과는 갈등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이 문제라고, 북중러 협력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북중러는 미국 자유주의를 넘어서기는커녕 그것에도 미달한 실패한 국가자본주의의 유산들이다. 이들은 군사갈등을 키우는 적극적 행위자들이기도 하다. 평등과 자유의 정치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성장이나 동아시아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반기에도 문재인 정부의 어정쩡한 행보가 이어진다면, 선의와 관계없이 동아시아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둘째, 한국의 잃어버릴 20년이 시작되는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업데이트될 때마다 낮아지고 있다. 연초에 3% 초반에서 이제 2% 초반, 또는 1% 후반으로 낮아졌다. 정부는 펀더멘털(fundamental)이 튼튼하니 재정지출을 늘려 단기적 경기침체에 대응하면 된다는 기조다. 야당은 소득주도 성장론 탓이라며 정기국회 때 정부를 밀어붙일 기세다.

하지만 한국 경제 침체는 정부나 야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조적이다. 먼저 세계경제가 문제다. 미국의 “R의 공포”, 중국의 성장둔화, 유럽 최후의 보루인 독일의 마이너스 성장률 등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매우 어렵다. 주요국 정부들은 양적완화와 적자재정으로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버텼지만 이제 약발이 다했다. 남은 경제정책 수단이 없다. 당연히 한국 경제를 이끄는 수출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더구나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주요 수출품들이 기술모방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선진국 무역장벽과 중국 추격으로 국제경쟁력의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

다음으로 인구절벽 문제가 한국 경제를 더욱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인구성장률이 몇 년 안에 제로에 도달한다. 인구감소는 노동투입 감소로 이어져 노동생산성이 더 상승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 늘지 않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경제의 더 많은 부분이 고령인구 부양에 사용돼 그만큼 성장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감소한다.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경제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일본이 1990년대 직면한 문제기도 하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쇼크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낮아진다는 것은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재정 처방은 사태를 단기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일본이 증명한 바다. 여야 정치권은 하반기에도 정쟁으로 경제문제를 다룰 것이다. 하나 이는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70년간의 한국 경제 성장 그 자체의 문제다. 단기처방과 정쟁의 허송세월로 하반기를 넘기면 내년에는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다.

셋째, 개혁에 대한 환멸 뒤에 무엇이 올 것인가?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내로남불’ 가족사가 많은 개혁 지지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그런데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은 단지 조 후보자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 정책 자체가 지금까지 그랬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의 구조적 문제를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았다. 그리고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포부를 제시했다. 하지만 권력개혁은 시나브로 검찰개혁으로 축소됐다. 누가 봐도 문 정부의 대통령 권력은 더 강화됐지 약화되지 않았다. 몸통은 내버려 두고 깃털만 건드리는 꼴이다. 노동존중 개혁은 어떤가? 올렸다 내리는 최저임금, 줄였다 늘리는 노동시간, 확대했다 축소하는 노동기본권 등 돌고 돌아 제자리다. 시장 존중 밑에서 노동도 존중해 보겠다는 딜레마를 정부는 풀지 못했다. 재벌개혁은 말하기도 부끄럽다.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하반기에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개혁의 무능과 부패를 심판할 가능성이 크다. 조국 후보자 논란은 징후적이다. 군사위기와 경제위기는 민심이반을 가속화할 것이다. 물론 지지여론 변화가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국민이 개혁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문 정부는 스스로를 촛불혁명 정부라 불렀고,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는 좌절이 점차 커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진보개혁 정부의 실패 이후 극우 포퓰리즘이 성장한 사례가 많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하반기가 아마 그런 조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개혁 실패, 구조적 경제침체, 그리고 핵전쟁이라는 극단적 위기까지 한국 사회는 또 한 번의 역사적 분기점을 지나가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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