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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탐정>을 '본방사수' 하는 이유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평소 TV 시청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데다 대개 밤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까닭에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던 내가 요즘 꼭 챙겨 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SBS에서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에 방영하는 <닥터탐정>이다. <닥터탐정>은 “산업 현장의 사회 부조리를 통쾌하게 해결하는 닥터 탐정들의 활약을 담은 신종 메디컬 수사물”이다.

내가 <닥터탐정>의 고정 시청자가 된 이유는 솔직히 말해 도중은(박진희)·허민기(봉태규)·공일순(박지영) 등 핵심 주인공들이 나와 같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이기 때문이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가 주인공인 의학 드라마가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전공의 의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 신기하고 뿌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드라마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이해하지만)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장면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좀 더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극본을 쓴 송윤희 작가 본인이 직업환경의학전문의다. 송윤희 작가는 지난해 바로 이 ‘안전과 건강’ 꼭지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 꼭 동료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직업환경의학전문의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애를 먹고 아쉬웠던 기억 때문이다. 내가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당시에는 ‘산업의학’이라고 불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업장에서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강의를 꽤 했다. 강의 시작에 앞서 늘 “저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라고 소개하는데, 대개는 ‘그게 뭐지?’ 하는 표정들이다. 직업병을 진단하고,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 실시하는 소음·분진 등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같은 일들을 하는 의사라고 하면 그때서야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뿐이 아니다. 처음 전공을 선택할 때 부모님께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아빠는 뭐하는 의사예요?” 하고 물었을 때도 쉽게 설명하려고 신경을 썼다.

사람들은 왜 ‘내과 의사’ ‘외과 의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이해하면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장황한 설명을 필요로 할까. 말이 어려워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도 ‘직업’ ‘환경’ ‘의학’이 각각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보다는 ‘직업’과 ‘의학’을, ‘환경’과 ‘의학’을 잘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소해서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사가 10만명가량 되는데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1천명이 안 되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대개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대학병원 혹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일반 외래가 아닌 특수건강검진이나 보건관리대행 같은 업무를 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렵다. 내가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사단법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부설 향남공감의원을 개설해 외래 진료실에서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건 그분들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처럼 1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중에서도 극히 소수다.

다행인 건 최근에 와서는 (여전히 뭘 하는 의사인지 설명을 해야 하지만) 듣는 분들의 이해가 조금 빨라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근래에 들어 직업병(혹은 업무관련성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피해노동자, 유가족의 공이 큰 듯하다. 이들은 지난해 10년이 넘는 싸움 끝에 대한민국 최고 기업, 글로벌 기업,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삼성으로부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끌어냈다.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이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 과정을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2014년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돼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 당신이 하는 일 때문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책도 있다. 2017년 발행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다. 현재까지 4천부 정도 발행된 이 책은 비록 발행 부수는 많지 않지만, 한때 인터넷 서점에서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든, 책이든, 드라마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똑같다. 당신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이 당신이 하고 있는 일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나 같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은 좀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김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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