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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비정규직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며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 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지난해 9월과 올해 7월 고용노동부는 두 차례 근로감독을 통해 드라마 제작현장 스태프 대다수가 명목상으로만 프리랜서일 뿐 그 실질은 사용자에게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사용·종속 관계에 있어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하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이는 이제 공지의 사실이 됐다. 드라마 제작현장 개선을 위해 지상파 3사와 언론노조·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는 지난 6월18일 노동시간 지속 단축과 드라마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드라마 제작현장 종사자협의체 운영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에 합의한 바도 있다. “사람을 갈아 넣어 만드는 방송”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뀌는 현장”이라 불리며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실태가 대표적으로 문제됐던 드라마 제작현장이 이젠 좀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 보기로 한다.

그러나 제작사가 주도하는 드라마 제작현장이 아닌 방송국이 직접 제작하는 방송제작 현장은 어떠한가. 혹은 방송국의 기본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인력운용 실태는 어떠한가. 그곳에도 드라마 제작현장과 같이 프리랜서 계약을 한 자들이 대거 존재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명목상 프리랜서’, 즉 실질상 ‘노동자’에 해당한다. 드라마 제작현장의 방송스태프들과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는 인력이라면 당연히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와 같이 그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 외 상당수도 방송국 기본 운용을 위한 행정업무·송출업무·전산업무·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및 관리업무 등을 담당하며 노동자성이 당연히 인정되는 일반 노동자들과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방송사에서 프리랜서라 불리며 수년간 일을 하던 노동자 몇 명이 얼마 전 회사를 퇴사한 후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하기 위해 필자를 찾아왔다. 방송사는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해당 방송사에서 일반 노동자들과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며 방송국 기본 운영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런 근무실질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맞으니 그에 따른 임금차액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진정이었다. 노동부는 근로실질에 따라 그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임금체불 시정명령을 했다. 그들이 지급받은 임금체불액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임금과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정도다. 그간 최저 근로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해 왔던 것이다. 또한 위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라 불리며 일하다 퇴사한 직원들 몇 명 역시 유사한 주장을 하며 이미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하고 체불임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방송사는 유사한 임금체불 진정이 거듭되고, 노동부가 수차례 체불임금 지급을 하게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이를 시정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방송국은 노동부 시정명령을 받는 것을 기피하며 합의 후 진정 취하방식을 고집하기도 했다. 사건 진행 내내 참으로 답답했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현재 상황을 모면할 생각만 할 것인지, 방송국 내부인력 운용실태 문제는 언제쯤에야 개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드라마 제작현장처럼 노동부가 대대적으로 근로감독이라도 하면 방송국들도 스스로 조금씩 바꿀 생각을 하게 될까?

임금체불 진정을 한 노동자 중 일부는 위 방송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는 부당해고로 다퉈 볼 수도 있었으나 복직을 바라지 않았다. 필자 역시 설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회사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이 방송사측에 묻고 싶다.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언제까지 희망 없는 직장으로 남고자 하는가.

그러나 절망은 아직 이른 듯도 하다. 이 방송사에는 위 노동자들과 같이 ‘프리랜서’로 불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들 중 일부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요구 중이다. 물론 방송사측은 여전히 프리랜서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요구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조의 교섭요구는 아직은 방송사에 희망이 있기에, 그 희망에 응답하라는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간절한 호소이자 최후통첩일지도 모른다. 이제 방송사측이 그들의 희망에 응답할 차례다. 더 이상 방송사라는 곳이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들의 희망을 담보로 그들의 젊음만 착취하고 소모품 취급하며 쉽게 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그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말이다. 그 첫걸음은 교섭요구에 조속히 응하는 것이다.

신선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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