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회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필자는 “21세기에”라는 표현을 애용한다. 예컨대 21세기에 아직도 비 오는 날 우산을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한다든지, 21세기에 아직도 순간이동을 못한다든지 등.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21세기에는 과학·기술·철학 등이 완성단계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행해지는 농담식 표현들이다.

그리고 오늘은 21세기에 벌어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21세기에, 한 신문사 노동조합은 설립총회를 마쳐 노조를 설립했다. 창간 이래 최초로 생긴 노동조합이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비조합원 2명과 함께(총 8인) 불투명한 절차에 의해 채용된 편집국장 임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사측은 이를 10분 만에 철거했고, 이사회를 열어 절차상 하자가 있는 징계처분을 했다. 분회장과 부분회장은 감봉 6개월에 각각 영남·호남지역으로 발령하고, 그 외 인원들은 모두 견책징계했다.

사용자는 분회장·부분회장이 지역으로 내려간 사이 조합원들을 접촉해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했다. 그사이 노동조합 핵심 간부인 분회장·부분회장·사무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조합원은 모두 탈퇴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측의 괴롭힘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입사 10년차 기자인 분회장과 부분회장에겐 기사 작성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모든 기사 작성을 금지시키고 하루 종일 필사만 하도록 했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배제했고, 신입기자들이 채용되는 경우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행했던 개별적 술자리 모임은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모두 금지됐다.

분회는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징계의 절차상 하자를 지적했다. 사용자는 징계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징계를 모두 취소하고 분회장과 부분회장을 복귀시켰다. 그러나 사용자는 복귀 40분 만에 대기발령을 하고, 2차 징계를 단행했다. 2차 징계 내용은 분회장·부분회장은 정직 6개월, 사무국장은 정직 3개월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자보를 함께 게시했던 비조합원과 노동조합에서 탈퇴한 인원들은 모두 경고만을 받았다.

이후 분회장·부분회장·사무국장은 편집국장의 요청으로 편집국장과 팀장들을 만나 면담을 했다. 그 자리에서 편집국장은 예전처럼 잘 지내 보자며 “이 카드는 받으라”고 얘기했다. 그 카드는 노동조합 탈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어 옆에 있던 한 팀장은 “너희들이 (정직기간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자리가 없거나 이상한 데로 흘러갈 수도 있어”라고 얘기하며 편집국장을 거들어 탈퇴를 종용했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거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국장은 정직기간 만료로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한 사무국장에겐 편집국장 약속대로 제대로 된 업무가 부여되지 않았다. 사무국장은 복귀 1주일 만에 경기도 의정부로 전보됐다. 그리고 전보발령 직전 부사장은 사무국장을 불러 폐간을 언급하며 “싸워서 뭐 할 거야. 발령지가 마음에 안 들면 좋은 데 찾아서 제2의 인생 기회를 찾아라”고 말했다. 사무국장은 다음날 의정부로 출근했다. 그런데 의정부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사무국장을 위한 책상도, 유선전화기도 없었다. 이에 대해 사무국장이 항의하자 편집국장은 10시 이전에는 사무실에서 나가 취재를 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측은 관행적으로 출퇴근 시간 즈음 기자가 출입처와 약속이 있으면 출입처로 직접 출근하거나, 출입처에서 직접 자택으로 퇴근하는 것을 허용해 왔다. 그런데 편집국장은 사무국장에게 반드시 의정부 사무실에 들러 옆 직원 유선전화기로 출퇴근 보고를 한 후에 출입처 또는 자택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사측은 그동안 기자들이 하루에 방문해야 할 출입처수를 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국장에게만 반드시 하루 세 곳 이상의 출입처를 방문하라고 지시하며 인증샷을 찍어 보내라고 지시했고, 신입기자들에게도 시키지 않는 취재보고서를 매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분회에 대한 압박도 빼놓지 않았다. 사측은 “건전한 노조를 만드는 것을 부사장님이 직접 간부회의 시간에 발표하고 여기서 하는 건 어떻냐, 2노조를 만든 후에 탈퇴해서 자연적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가는 건 어떻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분회는 어렵게 하나하나 싸워 나가고 있다.

위 이야기는 놀랍게도 20세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일련의 사태들은 21세기에 벌어진,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일이다. 필자는 위 사건을 보며 “21세기에 아직도?”라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에 아직도 노동조합을 설립한 이유만으로 불이익한 처분을 행하는 사용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필자는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딱 네 가지 진리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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