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이 불러낸 혁명론의 이름이 참으로 길다. 반제는 미일 제국주의에 의해 날로 악화되던 민족모순의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민족모순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문재인 정권에서도 ‘영원한 한미동맹’으로 격상됐다. 남한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무슨 무기가 들고 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미군은 세균전 무기까지도 자유롭게 실험하고 있다.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공군은 핵무기를 장착하고 제집 드나들듯 한반도 남단을 휘젓고 있다. 매년 거르지 않고 전쟁연습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쟁 목표는 이제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반독점은 재벌의 경제 착취구조를 변혁하기 위한 계급모순의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모순의 일방에는 한국 경제를 쥐어짜는 독점자본이 있고, 다른 일방에는 재벌의 독점체제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농민은 물론 자영업자와 중소자본가가 있다는 분석에 기초한 주장이었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원·하청구조’ ‘빈익빈부익부’ ‘갑질’ ‘골목상권 침해’의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지금 재벌, 즉 독점자본으로의 경제력 집중과 자본 집적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독점자본은 좁은 한반도 남단을 넘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부당한 지배를 극복한 이후의 체제 전략으로 제시된 이론이 민중민주주의다. 지배자에게는 자유를, 피지배자에게는 억압을 뜻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좁은 틀을 민중 전체가 혜택을 누리는 민주주의로 확장하는 것이 민중민주주의다. 여기서 민중의 개념은 폭넓기도 하지만 애매한 점도 있다. 노동자와 농민은 물론 자영업자와 중소자본가들이 한데 묶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을 수 있는 ‘을들의 연대’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혁명은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당시는 ‘법의 지배’가 사라진 군사파시즘 체제였다. 군사반란의 무장봉기로 집권한 독재자들은 철권을 휘둘렀다. 정치적 살인·고문·투옥·감시는 일상화됐다. 민의의 대변자라는 국회는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자유’민주주의조차 씨가 말랐다. 이런 상황에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군사파쇼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독재정권에 대한 조그만 저항도 반국가·반체제로 몰려 탄압받기 일쑤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자유의 공기가 질식당하는 사회에서 저항과 봉기의 기운은 무럭무럭 자랄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이 악랄할수록 이를 타도하려는 저항도 거칠어지는 것은 역사적 상식이다.

남북한의 화해와 교류는 민족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세, 즉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동맹, 나아가 한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지역 안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북한이 중국군과 러시아군을 끌어들여 매년 전쟁연습을 하고, 외국군의 영구 주둔을 자국 영토에 허용한다면 한국 정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말로는 평화경제를 외치면서 200조원 규모의 군비증강 계획을 발표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200조원이면 2천억달러다. 이 돈이면 사회복지의 기본이 되는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을 실현하고도 남는 돈이다.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은 계급모순을 해결하려는 방책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이 독점하는 부를 사회 곳곳에 고루 돌려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이루는 정책이다. 이는 조세제도 개혁, 산업정책 시행, 기업지배구조 개선, 복지제도 강화 등을 기본으로 한다. 노동존중은 자본가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결사의 자유’가 대표적이다. 사실 결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민주주의란 지배층에만 보장되는 자유를 피지배층에게도 확대하는 정치 체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선거나 의회라는 제도적 공간을 통해서 보장되지 않을 때, 정치적 격변인 혁명이 발생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영국도 미국도 프랑스도 다 혁명으로 건국한 나라들이다. 3·1 운동과 4·19 혁명과 광주항쟁과 6월 항쟁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국가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를 납치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처형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론이 군사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정당성에 동조하는 정치인들의 입에서 호명된 것은 흥미롭다. 이들이야말로 기존 체제에 반대하는 이념과 사상을 지닌 사람은 국가권력이 마음대로 체포하고 고문하고 처형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진 자들이다. 군사파시즘 체제를 끝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것이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의 요체였다.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여전하다. 아니 더욱 심화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반제와 반독점의 역사적 과제는 현재진행형으로 노동운동이 계속해 천착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그쳐야 하나? 소수 지배자만의 자유를 뜻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다수의 자유를 뜻하는 민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로 확장돼야 한다. 이는 경제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직장민주주의 등의 형태를 통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현돼야 한다.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의 마지막 대목인 혁명은 여전히 필요할까? 대통령선거와 의회·지자체선거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선거 행위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은 ‘촛불혁명’이 일어난 이유를 돌아보면 분명해진다. 역사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선거보다는 혁명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인류 문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역사적 실재인 혁명을 신비화하거나 종교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실천과 학문의 영역에서 금기시할 필요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늘 만물은 변하며, 항상 미래는 열려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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