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뭄바이에서 시작된 인도 남부 여행은 고아·함피·코친을 거쳐 이제 인도지도에서 뾰족 턱처럼 아래로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 ‘티루바난타푸람’이라는 도시까지 내려왔다. 남부 인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 여행의 마무리를 어디에서 할까 하고 구글 지도로 티루바난타푸람 주변을 확대·축소해 보다가 문득 인도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표시된 ‘몰디브’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엥? 웬 몰디브? 설마 이 몰디브가 그 몰디브 맞아?’

지도를 확대해 봤다. 그 몰디브가 맞았다. 꿈의 신혼여행지로 불리며 최고의 휴양지로 알려진 바로 그곳 말이다. ‘어… 몰디브가 인도에서 이렇게 가까웠어? 하긴 인도양에 있으니까. 그럼 여기(티루바난타푸람)에서 비행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의 꼬리가 이렇게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스카이스캐너를 돌려 보니 비행기로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정도밖에 안 걸렸고, 가격도 10만원대 중반이어서 도전해 볼 만한 일로 보였다. 인도 여행을 하다가 몰디브라니! 인도라는 삶의 아수라에서 빠져나와 지상 최고의 휴양지에서 피로를 풀 수 있는 완벽한 여행의 마무리! 이 계획을 세우고 얼마나 뿌듯했던지.

문제는 가격이었다. 하룻밤에 100만원씩 하는 포카리스웨트 광고에나 나올 법한 리조트에 묵을 엄두까지는 낼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몰디브에서의 휴양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궁하면 통하고, 구글링하면 솟아날 구멍이 보이는 법. 인터넷과 배낭여행 현자들의 가르침을 쫓고 쫓아 만들어 낸 극강의 몰디브 배낭여행 계획을 품에 안고 몰디브의 수도 말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몰디브는 꽤 많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인데, 바깥세상으로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이곳 말레가 유일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각자 예약한 숙소가 있는 섬으로 가기 위해 선착장이나 경비행기 이륙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택시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빙 돌아 선착장 근처에서 내려 배에 오를 준비를 한다. 그전에 우선 장을 좀 봐야 했다. 섬에 들어가면 주전부리를 사기가 만만치 않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에 들러 몇 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선착장 맞은편 골목 카페에서 출항 시간을 기다리며 모히토 한 잔을 주문했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바로 그 모히토인데, 웬걸! 맛이 너무 싱겁다. 알코올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몰디브는 술 판매가 자유롭지 않은 이슬람 국가라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보통 우리가 광고나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는 고급 리조트들은 그 자체가 한 섬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비행기나 고속 보트를 타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가 않다. 당연히 내 선택은 리조트섬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거주지인 ‘마푸시섬’이었다. 수도 말레에서 마푸시섬까지 완행버스 같은 배로 단돈 3달러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은혜로운가. 딱딱한 의자에서 고개 몇 번 꺾다 보면 어느새(2시간 반 만에) 마푸시섬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마푸시섬에는 3성급 호텔들이 제법 많다. 섬 곳곳에서 새로운 숙소가 올라가고 있는 것만 봐도 이런 식의 가성비 여행이 꽤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여행 비법이라며 뿌듯해했지만, 돌아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몰디브를 여행하고 있었다. 사람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깨달음을 새삼 얻게 된다. 아침식사를 해결할 곳이 마땅하지 않은 탓에 숙소를 예약할 때 아침식사가 포함된 것으로 하는 게 좋다. 저녁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해도 된다. 동네 곳곳에 뷔페식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있어서 모래사장 근처 조명 아래서 뽐내며 먹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보통의 한 끼 해결하는 정도이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마푸시섬에도 작은 해변이 있어서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몰디브까지 왔으니 여기서 그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여행자들을 위해 스노클링·스킨스쿠버·낚시 같은 각종 투어가 준비돼 있다. 그중에서도 아침에 출발해서 해 질 녘까지 리조트에 머물면서 밥도 먹고, 음료도 무한리필로 먹으면서 시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고급 리조트 일일체험 투어는 해봄 직하다. 이걸 해 줘야 그래도 어디 가서 내가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잔하면서, 광고에 나오는 바로 그 리조트에서 몸 좀 적시고 왔다는 체험 반, 허세 반의 여행담을 털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등껍질을 몇 번이고 벗기려 드는 끝장나는 햇살과 한없이 푸른 바다 위에서의 사흘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돌아오는 보트는 급행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남은 여행경비를 털어서 제법 과소비를 하기로 한 것. 그래도 정원을 꽉 채워 출발하니 N분의 1 가격이 생각보다 낮아졌다. 마치 날치 떼처럼 수면 위를 통통 튀어 날아가는 보트에 앉아 마푸시섬을 돌아본다. 살아 있는 동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더 아쉽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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