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대상판결 : 부산고등법원 2019. 5. 15. 선고 (창원)2018누1191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1997년 7월1일 H사에 입사해 사내 시설물 유지·보수업무(영선업무)에 종사해 오다가 근골격계질환인 어깨 근막통증증후군이 발병해 2017년 5월8일 진단을 받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이 같은해 7월21일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자 8월24일 창원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상병이 업무상질병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사 7명의 의견이 법원에 제출됐다. 주치의,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2명,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2명(1명은 대학병원 교수),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정형외과 전문의) 2명이었는데 이들 7명 중 업무관련성을 부인한 것은 법원 정형외과 감정의 단 1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업무관련성을 부인하고 2018년 11월14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업무관련성에 대한 법원 감정의 2명의 판단이 배치되는 상황에서 업무관련성 판단의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라 정형외과 전문의 판단을 우선시한 것이다.

1심부터 원고를 대리한 금속노조 법률원(법무법인 여는)은 항소를 제기해 “업무관련성 판단은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의 소견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항소심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2. 쟁점

업무관련성 인정 여부와 관련해 법원 감정의, 즉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정형외과 전문의의 감정 내용이 배치될 경우 신체부담 정도에 대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을 전문가 의견으로서 우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3. 판결요지

① 원고의 이 사건 상병에 관해 소견을 밝힌 의사 7명 중 ‘법원 감정의2’(정형외과 전문의)를 제외한 나머지 의사 6명은 원고가 수행한 업무와 이 사건 상병이 인과관계가 있다거나 그 인과관계가 인정될 개연성이 있다는 취지로 소견을 밝혔다(‘피고 자문의1’의 경우 인과관계에 관한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상병이 인지되므로 작업력 조사가 필요하다”는 소견 자체가 상병과 작업력, 즉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특히 원고측 자문의사뿐만 아니라 피고가 자문을 구한 의사들도 위와 같은 소견을 밝혔다는 점, 그중에서 1명은 명확하게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위 6명 의사들의 소견을 취신해 이 사건 상병이 원고가 수행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함이 합리적이다. 더욱이 위 6명의 의사들과 다소 다른 소견을 밝힌 법원 감정의2의 경우에도 그 소견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건 상병이 업무만으로 유발됐다고 볼 수 없고 업무 외적인 원인으로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으로서, 이 사건 상병의 원인을 전적으로 업무로만 보는 것을 배제하는 취지이지 그 상병에 대한 업무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는 취지로 해석되지는 않으므로, 위 법원 감정의2의 소견은 위 6명의 의사들의 소견과 양립 가능해 이 사건 상병과 원고가 수행한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② 그리고 설령 이와 달리 법원 감정의2의 소견, 특히 “업무와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음. (…) 좌측에 발생한 견갑골의 소원근 근막통증증후군은 업무로 인한 증상보다는 업무 외적인 요인(과거의 외상·신경정신적 스트레스·과도한 운동 등)에 의해 발생했을 것으로 사료됨” 부분이 이 사건 상병에 대한 업무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는 취지라고 보더라도 위와 같은 소견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업무 외적인 요인, 즉 외상이나 스트레스·과도한 운동 등이 원고에게 있었음이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 원고가 H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외상을 일으킬 만한 사고가 있었다거나 스트레스를 일으킬 만한 상황이 있었다거나 과도한 운동을 했다거나 그 밖에 다른 발병 원인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 오히려 피고가 제출한 을 제1호증의 기재 내용에 따르면 원고에게는 교통사고나 그 밖의 사고를 당한 이력이 없고 원고가 취미생활로 하는 운동은 팔이나 어깨가 아닌 하체를 주로 쓰는 달리기·등산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사건 상병에 대한 업무의 영향력을 단절시키기 위한 업무 외적인 요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이를 전제로 하는 법원 감정의2의 소견을 취신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하고, 나아가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나머지 6명의 의사들의 소견은 무시한 채 오로지 법원 감정의2의 소견만을 취신해 이 사건 상병과 원고가 수행한 업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타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③ 그뿐만 아니라 앞서 본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2항 라. 2)는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때 신체부담 정도는 ‘인간공학전문가·산업위생전문가·산업의학 전문의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법원 감정의2의 소견과 나머지 의사 6명의 소견이 모순된다면 정형외과 전문의인 법원 감정의2보다는 위 조항에서 말하는 ‘관련 전문가’에 더 가까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포함된 나머지 6명의 의사들의 소견을 취신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본다.

4. 평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요양신청을 하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의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 심의에서 신청 상병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 즉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해당 분야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청 상병이 존재하는지 여부와 업무관련성 문제는 분리해 후자는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판단에 귀 기울여야 함에도, 예를 들어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정형외과 전문의의 판단에 의지해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는 산재 승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개인 부담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에게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받아 요양신청서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는 관행까지 생겼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요양불승인 처분을 받게 되면 산재 노동자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는 원고(노동자)와 피고(근로복지공단)가 각각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하게 되는데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노동자는 직업환경의학과에, 근로복지공단은 정형외과(혹은 신경외과)에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가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고, 정형외과 감정의가 업무관련성을 부인(혹은 상병의 존재를 부인)하는 소견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업무상질병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정형외과의 판단에, 업무관련성은 직업환경의학과의 판단에 더 가치를 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법원은 마치 업무관련성에 두 개의 상이한 판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입증을 요구해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은 산재 사건에 있어서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라 업무관련성 판단에 있어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전문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점에 의미가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업무관련성 평가에 있어서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소견 이외에 산재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입증 부담을 요구해 왔던 법원의 관행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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