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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김한울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 김한울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한 IT 회사의 인사실장은 퇴근 한 시간 전, 프로그램 기획자로 입사한 사회초년생 김아무개씨에게 A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프로그램 설치 기술이 없던 김씨는 3일 연속 밤 11시까지 야근을 했지만, 결국 A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못했다. 인사실장은 본인이 내준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다른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벽을 보고 앉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인사실장은 “내가 널 잘 키워 주려고 해. 하드코어하게. 그러니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라고 했다.

한 제조업체 사장은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한 이주노동자 나아무개씨에게 “어린 나이에 타지에 와서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아들처럼 대해 줬더니, 네가 감히 날 이렇게 배신해?”라고 하며, 미지급 임금을 절대 주지 않겠다고 했다.

한 병원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지부장이 “노동조합의 지부장은 병원장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동등한 주체”라며 대화를 요구하자, 병원은 ‘하극상’이라며 지부장을 징계했다.

“우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야.” “아유 내 딸(동생) 같아서.” “내가 널 잘 키워 줄 테니 잘 따라와.” 이런 말들을 필자 역시 들어봤고, 많은 노동자들은 지금도 듣는다. 도대체 가족이 뭐기에 일하면서도 오빠·동생을 찾고, 가족 같으면 대체 누구에게 좋기에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을 하는 걸까.

여기서 가족이라 함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명확한 위계에 의해 운영되는 집단을 의미한다. 즉 '아버지-어머니-아들-딸'처럼 각각의 위치에 따라 역할과 한계가 분명한 구시대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가족의 속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회사와 닮아 있다. 가족 내 ‘가부장성’과 회사의 ‘위계질서’가 서로 닮아 있는 것이다. 두 집단 모두 구성원 간 명확한 위계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위계의 우위에 있는 갑은 을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갑은 을에게 별의별 지시를 할 수 있으며, 을은 이를 따라야만 한다. 만약 을이 갑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이에 의문을 갖는다면, 그 순간 가부장의 권위가 훼손되거나 직장내 위계질서가 문란해진다. 이는 곧 집단의 존재위기다.

이러한 집단 안에서 갑의 군림이 사회통념을 벗어난 괴롭힘 등의 폭력으로까지 나아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가족은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은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된다. 가족은 신성한 공간이라서 그 안에서 법을 따지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가족 같은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노동자는 돈을 ‘타 가는’ 사람이자, 사랑으로 ‘키워져야 하는’ 자식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회사에 늘 고마워해야 하고 충성해야 한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상사의 괴롭힘은 노동자를 잘 키우기 위한 하나의 훈육 방법이 된다. 이러한 회사에서 노동자는 상사의 괴롭힘조차 감사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회사에 근로계약서를 써 달라는 요구도, 최저임금 위반이라는 이야기도 꺼내서는 안 된다. 이를 외부에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며, 이러한 금기를 깨고 외부에 이야기했을 경우 이는 곧 가족에 대한 배신이다. 그가 노동조합이라도 만들게 되면 이는 회사의 위계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자, 화목했던 가족을 산산이 조각내는 파렴치한 행동이 된다.

그러나 가족 같은 회사에서 노동자는 단 한순간도 화목함을 경험하지 않는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노동자는 본인의 임금을 사장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상사의 괴롭힘을 감사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의 ‘가족 같음’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오로지 위계의 우위에 있는 갑뿐이다.

사회 초년생이 첫 직장에서 일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고, 임금을 제대로 못 받은 노동자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회사에서 누군가에 의해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위법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누구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노동조합 활동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의 수행일 뿐이다. 그 무엇에 대한 하극상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 족! 같은 회사를 원하지 않는다.

김한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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