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정부와 여당은 프레임을 바꿨다. 이제 한일 갈등은 역사해석이 아니라 경제침략 문제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의 경제 도약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정부 지식인들도 군국주의 야욕, 동북아 패권 전략, 한국 반도체산업 견제 등으로 화제를 돌린다.

한일 갈등이 미래 문제로 확대되자 반일 운동은 이제 경제적 애국주의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일 경제전쟁의 최전선 대장군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전쟁 시기 경제정책을 흉내 내듯 노동·안전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국난에 파업이 웬 말이냐며 노동조합을 압박한다. 식민지 시기 전시경제법이 발단이 된 강제징용 노동자 소송이 오늘날에 새로운 전시경제법의 도화선이 돼 노동권을 위협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가 꼬인 것인가. 나는 대법원 판결과 정부 대응, 그리고 최근의 경제침략설로 확장된 반일 캠페인 모두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전제 위에서 법리를 전개하는 대법원 판결은 그 전제부터 틀렸다. 19~20세기 초 세계 질서는 제국-식민지 관계로 이뤄졌는데, 이를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판결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렇다면 당시 세계가 모두 불법이란 것인가. “부당하다”의 도덕적 표현으로 ‘불법적’이란 말을 판결의 법적 잣대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 이는 법원이 판결할 대상이 아니다. 제국주의 식민지배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 부당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진 야만의 속성 탓에 부당한 것이다.

식민지배 불법에 대한 보상이 아닌 청구권협정은 위자료 청구와 상관없다는 판결 역시 문제가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은 역사적 맥락으로 보자면 우리나라가 미래를 위해 과거사를 청산한 협정이었다. 저개발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하려면 스스로 축적이 가능한 수준으로 도약해야 하는데, 1960년대 한국은 자본 부족 탓에 도약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한일협정으로 한미일 동맹이 만들어지고, 투자자금이 확보되면서 우리나라는 비로소 그 도약을 시작했다. 이런 한일협정은 친일 매국과 상관없다. 솔직히 문제는 오히려 한일협정 이후였다. 어렵사리 시작한 경제성장의 결과가 오늘날의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한미일 군사동맹과 한반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징용노동자 대법원 판결 이후 촉발된 한일 갈등은 일본만큼이나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가 식민지배와 한일협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탓이다. 식민지배가 불법이니 사과하라는 요구는 공허하다. 한일협정의 문구해석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가 만든 경제성장 역사를 망각하게 만든다.

정부와 여당이 부추기는 반일 운동은 이런 점에서 반일 포퓰리즘일 뿐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은 어떤 적을 설정하고, 그 적 탓에 현재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하면서, 그 거악을 쳐부수기 위해 대중의 정념을 동원하는 것이다. 불법이민 탓에 백인들이 어려워졌다며, 멕시코 국경에 거대 장벽을 세우는 트럼프의 정치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경제침략 탓에 나라가 위태롭다며, 반일 민족주의 장벽을 세우자는 청와대와 여당의 선동은 트럼프를 닮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과연 현재의 일본이 온 국민이 나서 상대해야 할 거대한 악인가? 일본 보수세력이 저성장·고령화의 어려움을 대외적 변화로 해결해 보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의 주장처럼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갈 수는 없다. 군대를 앞세운 영토침략은 19세기 자본주의 특징이며, 21세기 금융세계화 시대는 영토가 아니라 세계적 금융시장을 통해 질서가 만들어진다. 만약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간다면 영토침략 전에 자본시장 붕괴로 망해 버릴 것이다. 동북아 패권을 위해 한국을 견제한다는 분석도 논리적 비약이다. 동북아 패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지 한국이 아니다. 일본이 제안하고 미국이 확장한 인도-태평양전략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경제·안보 협력이다. 오바마 정부가 일본을 중심에 두고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자유구역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 일본이 한국의 경제도약을 견제하려 수출규제를 했다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다. 한국경제는 도약하는 중이 아니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르는 중이다. 미국이 1980년대 일본을 견제했을 때나 2010년대 중국을 견제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때 미국 자리에 일본을 둔다 해도,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를 당시 일본이나 중국과 견주는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과대평가 혹은 시쳇말로 ‘국뽕’일 뿐이다.

현재 한일 갈등 쟁점은 경제침략이 아니라 과거사다. 상황을 과장해 실제 쟁점을 숨겨서는 안 된다. 이번 과거사 논란은 일본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억지를 부리는 독도영토 문제와도 다르다. 두 문제는 일본이 갈등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번 징용노동자 소송 건은 식민지배 불법성 규정으로부터 이어지는 한일협정 해석 문제다. 일본도 할 말이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와 1960년대 정세에 대한 한국의 무리한 해석이 갈등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다.

나는 우리나라가 경제발전 속에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길 희망한다. 군사갈등을 부추기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개혁돼야 하고, 일본의 군사적 팽창을 제어할 일본 평화헌법은 지켜져야 하며, 한일 간 자유무역이 양국 노동자의 노동권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확대하는 반일 캠페인은 이런 지향과 거리가 멀다. 친일파 색출에 나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친일·반일 구도를 내년 총선에 유리하게 이용하자는 더불어민주당 내부 보고서, 도쿄올림픽 보이콧, 일본여행금지구역 설정 등의 과격한 선동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 내는 여권 정치인들을 보라. 심지어 며칠 전 문 대통령은 한일협력을 남북협력으로 대체하자는 의미의 주장도 했다. 준비된 변화라면 환영이다. 하지만 발언이 끝난 후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북핵 해결은 요원하고 규제 없는 금융시장은 한국이 제멋대로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반일 캠페인에서 만들어지는 말의 성찬은 나라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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