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여름은 여름인 모양이다. 등줄기에서 땀이 그냥 흐르니 말이다. 안 그래도 고약한 놈들 탓에 다른 뉴스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와 98호 등의 비준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 개정안은 노조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인정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내용을 대부분 담았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 후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과연 가능할까. 주위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아직까지 없었다. 발표 직후부터 노사 양측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가 위 법률들에 대한 관심이 있을까. 무슨 내용인지 아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정부가 굳이 개정안을 그것도 한여름에 발표한 모습에, 우리는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관계법 개정을 연동시켰다. 이러한 태도는 앞서 보듯 국회 지형만 감안하더라도 ‘정부는 기본협약을 비준할 의지가 없다’는 자백에 가깝다. 무슨 수로 법률 개정을 바란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밝히지만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을 반드시 연동시켜야 할 헌법적·법률적 근거가 없다.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가지는 협약비준 권한은 그 자체로 행사하면 그만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기본협약에 관한 비준을 위한 그 어떤 전제조건도 달고 있지 않다. 관련법 개정은 그 후에 해도 충분하다. ‘협약과 법률제도의 불일치가 걱정된다’는 거짓 주장은 그야말로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예상컨대 문재인 정부에서 기본협약 비준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듯하다. 지난해부터 기본협약 비준에 관한 수많은 토론과 연구가 있었는데 고작 그 결과물이 개정법률안 제출이라니. 임시로 책임을 면해 보겠다는 얇디얇은 수가 보이지 않는가. ‘국회가 법을 개정해 주지 않으니 정부로서도 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실을 찾은 게다.

개정안 내용도 구차하기 그지없다. 기본협약의 핵심은 노동자 단결권에 관한 것들이다. 노동부가 최소한의 진심과 선의를 보이려 했다면 공무원·교원노동자, 해고노동자, 이른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단결권에 한정한 간결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2년→3년)에다 쟁의활동 제한은 물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활용제한까지, 단결권과 무관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오히려 단결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들이다. 노사 간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다. 정부는 진정 기본협약 비준의지가 있는 것인가.

여당은 한술 더 뜬다. 당 지도부 차원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유예와 화이트칼라이그젬션(고소득 노동자에게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미국 제도) 같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법률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입법활동에는 손을 놓고 그 역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기본협약에 관한 법률안 개정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보수야당들은 개정안에 대해 논평조차 내지 않고 있다. 굳이 의견을 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개혁정책이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한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노동정책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오랜 기간 쌓인 부조리를 한꺼번에 청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문제는 방향이다. 진정한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최저임금 개악부터 번번이 되풀이되는 정책 실패를 보면서 ‘과연 우리가 누구를 지지했던가? 이 정부가 과연 노동자를 존중하는 정부 맞나’라고 묻게 한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 발의로 의심은 확신이 됐다.

고약한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창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앞장서 결연히 맞서고 있다. 양국 노동자 간의 성실한 협상도 진행 중이다.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 정리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일부 사용자는 노동자들의 노력에 응원은 못할망정 ‘이때다’ 하고 ‘경제가 어려우니 노동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흘러간 유행가를 다시 부르고 있다.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실망을 안길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