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강예슬 기자>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대응책으로 환경·산업안전보건 관련 인허가 기간단축 같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대책은 규제완화라기보다는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대체물질·기술개발을 위한 인력 집중투입 등을 통한 행정처리 기간단축에 쏠려 있다.

재계는 그러나 화학물질 관련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제를 대폭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계의 이런 움직임이 일본 수출규제 관련 실제 지원이 필요한 기업을 포함해 관련 법규를 지키려는 선량한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단축, 규제완화 아냐”

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발표한 공정안전보고서(PSM) 심사기간 단축 대상은 2개 기업의 3개 사업장이다. 모두 일본이 지난달 1일 발표한 수출규제 대상 3개 물질 중 하나인 불화수소(에칭가스)를 개발하는 곳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유해·위험물질을 제조·취급·저장하는 설비를 보유한 사업장은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제출해 심사·확인을 받아야 한다. 불화수소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상 공정안전보고서 제출대상 51개 화학물질 중 하나다.

해당 업체가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 신고하고, 노동부 보완요구를 이행하기까지 평균 54일 걸린다. 노동부는 이 기간을 30일로 단축할 계획이다. 신고·절차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해 그 기간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는 “공정안전보고서 제도는 그 자체가 강력한 규제이기 때문에 인력을 대거 투입해 심사기간을 줄인다고 해서 기업이 요구하는 규제완화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재계가 공정안전보고서 심사기간 단축을 요구한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지원책도 비슷하다. 환경부는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한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와 기존 사업장 영업허가 변경 신청에 걸리는 기간을 75일에서 30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별도 규제완화 없이 가용인력을 최대한 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계는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화학물질 관련법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재계 “정부 대책 만족 못해”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대책을 발표하자 기업과 경제단체 관계자들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을 잇따라 요구하고 있다.

화평법 등록제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만들었다. 국민건강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의 유해성·위해성을 기업이 미리 파악해 등록한 뒤 유통시키도록 하는 제도다. 화관법은 화학사고 발생을 줄이고 사고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012년 구미 불산누출 사고를 계기로 규제가 강화됐다.

재계는 “화평법과 화관법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할 대체물질이나 신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내년 1월16일부터 시행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화평법·화관법과 함께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어렵게 하는 3대 규제”로 규정하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재계 요구를 반영해 화학물질 관련법 규제완화 폭을 넓혀야 한다는 쪽과 법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부딪히고 있다.

“규제완화 요구 재계, 소수 목소리일 뿐”

재계가 국민안전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지금까지 나온 정부 대책에서 한발만 물러서면 규제완화로 이어지게 된다”며 “재계가 우리 사회를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전으로 되돌리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기술이나 대체물질 개발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주민과 노동자에게 “우리 공장은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려고 하는 다수기업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얘기다. 김신범 부소장은 “최근 화학물질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기업의 일부 주장에 불과하다”며 “예를 들어 불화수소 제조기술을 개발하려는 기업은 안전공정보고서를 성실하게 신고해 지역주민의 신뢰를 받고 싶어 하는데 이런 기업을 흔드는 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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