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1.20 수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김기덕의 노동과 법
친일파·극일의 노래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세상은 어차피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서 있다. 수많은 기준을 말하지만,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을 제하고 보면 마지막에 남는 기준 하나로 우리 세상은 규정된다. 오늘도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노동운동으로 설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징계 등 불이익처분, 손해배상 및 가압류가 매일노동뉴스 기사로 올라온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리해고·고용보장 그리고 통상임금과 임금체불 등 노동자 권리를 둘러싼 노동자 요구와 투쟁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이런 노동의 기준으로 보자면 세상은 노동자를 위해 서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북핵과 비핵화, 남북대화와 북미협상,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경제보복 등 노동보다 압도적인 것들이 세상을 세우고 있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운동이 시작된 이후 그 기세에 눌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목소리를 낮추거나 그에 합세해 외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부정하고 싶어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노동운동사였다. 그중 가장 위력적인 기준은 국가를 둘러싼 주권을 두고 전개됐다. 특히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는 민족 단위로 한 국가의 수립을 위한 민족해방운동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운동 위에 서 있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가를 수립하고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국제주의를 내세운 구사회주의 체제조차 이를 넘어서지 못할 정도였다. 근대 이후 세계사는 민족과 독립국가라는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지경이다. 단순히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라고 설명하기에는 그에 대한 인민의 열광, 그리고 기꺼운 희생이 너무도 강렬하다. 그 기준으로 고양될 때에는 애국이 모든 기준을 삼켜 버린다. 그러니 노동의 기준이야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잊힌다. 노동자의 자유가 짓밟히고 노동자의 권리가 삭감돼도 노동자들조차 그 열광에 눈이 먼다. 단순히 광포한 파시즘에 노동운동이 압살당하는 것이라고 기록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괜히 계급모순을 말하던 노동운동이 민족모순을 주요 모순이라며 강령의 맨 앞에 내걸고 투쟁했던 것이 아니다. 현실 운동에서의 성공, 국가권력 쟁취를 오직 민족모순을 부여잡고 투쟁한 경우에만 이뤄 낼 수 있었던 것도 이상과 같은 기준의 역사로 보게 되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계급을 잊은 자는 권리를 잃지만, 민족(국가)을 잊은 자는 (국가)권력을 잃는다. 근대 이후 냉정한 세계사였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우리 노동운동 앞에서 그 열광이 떠돌고 있다. 최근 경제보복을 자행하는 일본에 맞서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아직은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 노동자, 노동운동까지도 점점 그에 합세해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2. 앞에서 본 것처럼 새삼스럽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은 ‘노동(자)을 위해서’보다는 애국이 앞선다. 뭐라 해도 국가라는 기준으로 세워진 세상이다. 국가와 그 유사개념으로 사용되는 민족이 세상을 가른다. 애국이냐, 매국이냐.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 대한민국은 그렇게 서 있다. 대내외의 최고 절대 및 자주독립의 권력, 헌법의 주권 선언은 이를 확인해 준다. 다시 말하지만, 근대 이후 150년 넘게 전개해 왔던 노동운동도 그걸 넘어서진 못했다. 단지 그걸 넘어서야 한다고 몸부림쳤던 운동사를 썼거나, 운동을 거기에 기대서 전개했을 뿐이다. 민족을 두고서 진행됐던 사투는 제국과 식민지의 운동을 할퀴고 지나가 오늘 많은 국가에 흔적을 남겼다. 이 땅에 자본주의가 이식됐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의 운동이 그랬다. '친일파'가 어떠한 말보다 앞섰다. 자주독립의 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통해 건설할 수 있다고 건국강령에 썼다. 돌이켜 보면 오늘 일본의 경제보복에 친일파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역사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위해 친일파 청산을 외치기도 한다.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을 편드는 듯한 자들을 친일파라고 비난한다. 지난달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을 지배한 일본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당시 경제협력 증진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달러를 언급하고서, “이는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며, '배상'은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보상'은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당시(1965년)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고 말했다. 식민지 일제를 부정하고서 수립한 대한민국은 당연히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해야 마땅한 것이고, 그래야 국가로서 존재이유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니, 조국의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조국의 말에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보수언론과 '지일파'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비난하고 나섰지만, 그들이 비난의 말을 더하면 할수록 그들이 친일파라고 자백하는 꼴이 될 뿐이다. 이렇게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을 편드는 자들을 '친일파'라고 비난한 조국의 말은 정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이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에 '친일파'를 묻는다면, 조국의 말로 그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3. 그런데 ‘친일파’를 넘어선 세상이 없다. 오늘 이 나라에서 친일파를 말하는 자들은 친일파 없는 이 세상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친일파 없는 세상은 노동을 위한 세상이 아니다. 기껏해야 건국강령에 썼던 자주독립 대한민국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말하는 친일파 없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운동처럼 '친일' 지주와 자본가를 청산해서 친일의 물적 토대까지 뿌리 뽑겠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 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 자본의 청산도 말하지 않고 있다. 고작해야 '친일파'가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을 편들어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무슨 새 세상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별 볼 일 없이 '친일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부터 노동운동은 민족과 국가 앞에 주눅이 들었다. 언제나 노동 앞에 민족과 국가를 앞세웠다. 그러하기에 오늘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 불매운동 대열에 일부가 합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노동의 기준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스스로를 잃고 만다. 불매운동이 어째서 노동을 위한 것인지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해도 노동운동은 거기서 ‘노동을 위해서’를 찾아 행동해야 한다.

4. 일본의 경제보복에 오늘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예외사업장으로 인가를 감수하고, 내일은 또 다른 노동자 권리 삭감을 감수할 것인가.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를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수출 규제품목을 다루는 기업의 관련 연구와 연구지원 필수인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 동의를 받아 주 5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53조4항),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9조2항), 일본의 경제보복이 여기서 자연재해와 그에 준하는 사고의 발생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8월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가) 제외 방침이 정해지고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 그리고 국민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며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가자는 내용의 생방송 모두발언을 했다. 이어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영향을 받게 될 기업에 주 52시간제 예외인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는 방식인지, 별도 입법 방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는 '재량간주근로시간제 운영 안내서'를 발표해 사용자가 유연근로시간제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의원들은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시기를 더 유예하고, 고소득 전문직에는 그 적용의 예외를 인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어째 세상이 노동자 권리를 삭감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이 노동자 권리 삭감이라니. 문재인 정부의 ‘친일파’, 일본 극복 ‘승리의 역사’라는 합창이 기껏해야 노동착취를 통한 자본을 위한 ‘송가’였더란 말인가. 기본적으로 소재 산업 등에서 일할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이는 임금 등 처우 우대를 통해 가능한 것이니 이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 발표하고, 교육·훈련을 통해 필요인력 양성 방안을 강구해 청년취업 문제까지 일거에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어야 했다. 그런 다음 일본 경제보복 등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취업 노동(자)의 노력과 헌신 등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 동의를 얻는 방안을 내놔야 했다. 정말로 불가피하게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 권리의 삭감 내지 동결 등 노동자 희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안을 제시하고, 동의를 통해 추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운동사를 보면 노동운동이 건재한 경우 권력과 자본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에 무작정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안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했다. 독일의 노동자평의회·공동결정제 등 많은 것들이 이렇게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희생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자본을 위한 노동 강탈이고, 이를 추진하는 것은 권력의 횡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뭐라도 노동의 기준을 포기하라는 것,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는 걸 멈추라고 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존재이유를 부정하도록 강요하는 짓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기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