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와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가 지난달 11일 오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황소상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이재광 사장에게 노조탄압 의혹을 제기하며 퇴진을 촉구했다.<금융노조>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외부 컨설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컨설팅 보고서에는 노조 가입범위 축소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사협의회 합의가 단체협약을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금융노조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위원장 양호윤)는 "공사가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조와해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 범위 축소 권고, "노무조직 의사소통 위축"=<매일노동뉴스>는 공사가 유명 법무법인 A사와 노무법인 B사에 의뢰해 각각 작성한 '노사관계 현황진단 및 전략자문 보고서'와 '노사관계 비전과 대응전략 보고서'를 5일 입수했다. 공사는 지난해 8월과 9월 두 회사에 총 3천만원을 들여 컨설팅을 의뢰했다.

A사 보고서는 11월 공사에 제출됐다. A사는 보고서에서 “인사담당자들의 다수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면 노사관계에서 일방적인 정보우위를 노조가 가질 수 있게 된다”며 “노사관계는 본질적으로 상호 대립관계에 기초하는데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은 인사노무조직 내의 의사소통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합원 가입범위 축소를 권고한 내용이다.

지부와 공사는 2007년 12월 단체교섭에서 "인사·노무·예산 담당자 중 업무별 필수요원을 제외하고 자유로운 노조 가입과 탈퇴를 허용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공사는 A사와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인사·노무·예산 담당자 전원의 노조 탈퇴를 지부에 요구했다.

지부의 대표성을 부인하려는 듯한 대목도 눈에 띈다. A사는 “노사협의회와 단체교섭은 목적·배경·당사자 등에서 확연히 구별되므로 지부가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구성을 비조합원으로 확대하라는 권고로 풀이된다.

◇공사, 이사회에서 노사협의회 기능 강화하나=B사 보고서는 공교롭게도 노사협의회 기능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B사 보고서 전체 분량은 54페이지다. B사는 보고서 절반가량을 노사협의회에서 의결가능한 사항을 설명하고 운영상 법적 쟁점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B사는 “노사협의회 합의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목적으로 이뤄져 노동조합과 사용자 쌍방이 서명·날인하는 등으로 단체협약의 실질적·형식적 요건을 갖췄다면 이는 단체협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B사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은 협의사항을 합의한 경우라도 노사협의회 합의사항이 단체협약이 아닌 한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에 우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취업규칙을 개정해 (노사협의회 합의를) 원상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취업규칙 변경에 지부가 동의하지 않았을 경우 대응책도 제시했다. B사는 보고서에서 “사규를 개정할 필요가 있으나 노조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신규 근로자에게만 취업규칙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노조 동의를 받지 못한 취업규칙은 기존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으나 취업규칙 변경 후 변경된 취업규칙에 따른 근로조건을 수용하고 근로관계를 갖게 된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변경된 취업규칙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미래 입사자에 대한 노동조건을 지부 동의 없이 공사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사는 향후 노사협의회 기능과 논의 범위를 넓히는 데 힘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는 올해 5월 열린 이사회에서 그간 단체교섭에서 논의했던 각종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을 노사협의회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호윤 위원장은 “회사가 단체교섭에서 다뤘던 내용조차도 노사협의회 논의사항이라고 단정하고 협의로 정할 수 있다고 우기고 있다”며 “보고서에 조합원 가입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을 보면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집행하기 위해 컨설팅을 진행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사합의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 찾는 용역"=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관계자는 “조합원 가입범위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노조 규약으로 정할 문제이지 사측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과 오랫동안 쌓아 온 노사관계를 무위로 돌리려는 등 노조를 노사관계 당사자로 보지 않으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문재인 정권하에서 노사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용역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노동탄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사 관계자는 “혹시 모를 사규 개정 때 지부가 미회신할 경우 어떤 법률적 쟁점이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고 각종 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문의였다”며 “협력적인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컨설팅을 의뢰했고, 전체적으로 문제될 내용이 없는 보고서”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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