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9.19 목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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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빗소리는 누구의 통곡이었나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집 바로 옆 공터에는 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공사가 시작되고, 자재 옮기는 소리, 기계 움직이는 소리에 알람이 따로 필요 없다.

밤새 천둥·번개가 치고 지칠 줄 모르는 폭우가 계속 쏟아진 어느 날, 잠결에 오늘만큼은 공사장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휴대전화 알람도 켜 뒀다. 더위에 선풍기를 켰다 껐다 뒤척이다 눈을 뜬 아침에도 그랬다. 한 번쯤은 아침이 조용히 시작되길. 그러나 어김없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오전 7시라고 알려 줬고 빗소리도, 더위에 찢어질 듯 우는 매미소리도 공사장 소리를 덮지는 못했다. 이 비를 뚫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이런 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칠 줄 모르고 비가 쏟아지던 그날 아침, 빗물저류배수시설 터널에서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진 날 아무런 주의사항도 대책도 전달받지 못한 채, 다른 곳도 아닌 빗물배수시설에 들어가야 했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그리고 뒤늦게 이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노동자를 6만톤의 물이 집어삼켰다.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터널 안에 들어가도 될지 확인하고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위험이 예상되는지, 무엇을 주의하고 위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최소한 정확한 정보와 대책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알려 줘야 했던 것 아닌가.

서울시와 양천구, 현대건설과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작업구조 속에서 정작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는 정확한 상황과 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위험이 발생하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아무리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날씨 탓에 일어난 재해라고 한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도로가 침수될까 봐 승용차를 타는 것도 저어되는 날, 빗물배수시설에 무방비 상태로 들어가도록 한 자들은 누구인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지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과연 누가 제대로 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지난 6월 고용노동부는 폭염대비 노동자 건강보호대책을 발표했다. 섭씨 35도가 되면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노동자들이 이를 근거로 작업중지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한파가 살을 에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일정 기온 이상 혹은 이하가 되면 작업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 강수량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작업이라면 일정 강수량 이상이 예측되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는 것.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복잡한 분석도, 경우의 수에 대한 셈법도 별달리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무더위와 폭우, 폭설과 한파에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며 자위한다. 그러나 그런 궂은날 일을 멈추고,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일을 멈추면 비용이 발생한다는, 언제나 통용되는 그 논리는 한 사람의 삶,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수많은 세상을 무너뜨리고 이를 정당화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일을 할 수 없다면 일을 멈추면 되지 않냐며 노동자들에게 선택과 책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반복되는 인재를 막을 수 없다. 더욱이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태라면 이는 일방적인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이, 자연재해 뒤에 숨는 만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오민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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