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뭄바이에서 시작된 인도여행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뉴델리·아그라·바라나시·콜카타처럼 잘 알려진 도시들은 모두 북쪽에 있다. 나름 익숙한 도시들을 뒤로 하고, 낯선 인도 남부를 헤매기로 한 것은 북쪽과는 다른 인도와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히피들의 휴양도시 고아와 게으른 여행자들의 도시 함피를 거치면서 그 기대가 제법 채워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방향을 더 남쪽으로 틀었다. 함피를 떠나 반나절 기차를 타고 떠오르는 인도 IT의 중심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인 벵갈룰루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야간열차로 갈아타고 12시간쯤 내려가 도착할 곳은 남부 케랄라 지역의 중심도시인 어나쿨람역. 쌀쌀한 새벽 공기가 걷히며 먼동이 트기 직전 도착한 기차역은 북쪽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특별히 인도를 ‘디스’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뭄바이에서 북부로 오르던 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차역 노숙자나 노숙견, 똥밭 화장실이 일단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잘 정돈된 대기용 의자들이 낯선 방문자들을 맞고 있었다. 게다가 충격적인 것은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들까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 한마디로 인도스럽지 않은 깔끔하고 잘 갖춰진 첫 인상에 제법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남부의 색다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역 바깥으로 나와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택시를 찾으면서 또 한 번 놀란다. 웃돈을 요구하지 않는 정찰제 프리페이드 택시가 떡하니 역 앞에 늘어서 있었던 것. 하아. 프리페이드 택시라고 해도 내릴 때가 되면 말이 바뀌는 곳이 인도인데, 여기는 타고 내릴 때 웃돈이나 잔돈에 대해 군말이 없다. 이 인도스럽지 않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혼란과 의문은 잠시 접어 두고 인도 남부 최대 차 생산지인 문나르로 가는 첫차에 올랐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서 5시간을 산속으로 가야 문나르에 들어갈 수 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칼바람을 버티며 두세 시간쯤이나 갔을까? 창문 밖으로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백 명은 족히 될 것 같은 학생들의 산속 등굣길.

‘이렇게 깊고 높은 산속에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있다니! 역시 인도야!’

문나르는 우리의 보성과도 같은 곳이라 차밭 구경이 우선이다. 넓은 차밭을 돌아보려면 택시 한 대를 한나절 빌리는 게 최선이다. 시내에 서 있던 택시 한 대에 다가가 얼마인지 묻자 핸섬하게 생긴 택시 운전사가 값을 부른다. 예의 여행자 바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비싸다고 인상을 좀 썼더니, 여유 있게 웃으며 ‘그럼 주고 싶은 만큼 주쇼’라는 택시 운전사의 여유와 기품이 느껴지는 태도에 한 푼도 바가지를 쓰지 않겠다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여행자는 그만 민망해지고 만다. ‘어허~ 남쪽은 다 이런가? 하여간 좀 다르긴 다르네.’ 기차역과 학생들에 이어 또 하나의 의문이 더해졌다.

이틀간의 문나르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나온 어나쿨람 시외버스터미널. 이번에는 택시와 보트를 갈아타며 포트 코친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포트 코친은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인도에서는 희귀하게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항구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동네 곳곳에서 포르투갈과 가톨릭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문나르에서도 그랬지만, 포트 코친의 성당 역시 꽤 많은 이들이 모여 미사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힌두교와 이슬람으로만 알고 있는 인도의 다른 모습이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와중에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아이들은 문나르에서 봤던 것처럼 깔끔한 교복 차림이었다. 이쯤 되니 슬슬 그동안 쌓아 뒀던 궁금증을 풀어야 할 때가 됐다. 숙소로 돌아와 깨끗한 기차역과 공공시설, 깔끔한 교복과 학생들, ‘삥’ 뜯는 데 관심이 별로 없는 택시 운전사 등등의 의문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케랄라 역사에서 분명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북쪽과 다른 색깔과 향기가 날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은 채.

‘흐음. 역시 일이 있긴 있었군.’

검색을 통해 뭔가 찾기 찾았다. 케랄라를 인도의 다른 지역과 구별해 주는 가장 큰 차이점은 ‘공산당의 집권’이었다. 무려 반세기 이전부터 이곳은 인도공산당이 선거를 통해 집권을 이뤄 낸 곳이었다. 공산당 집권을 가능하게 해 준 배경에는 그 시대 활동가들이 지역 곳곳으로 파고들어가 교육과 문화운동에 헌신해 왔다는 배경이 한 꺼풀 안에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일찍부터 가톨릭·불교·힌두교·이슬람이 공존의 묘를 터득한지라 종교적 갈등이나 그로 인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었다.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부침을 겪긴 했지만 최근까지도 집권을 이어 온 지역 공산당이 펼친 토지개혁, 교육과 공공서비스 정책이 케랄라를 여행자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조금은 다른 색깔의 인도를 만들어 내는 큰 힘이 된 모양이었다. 컬러풀 인도의 낯선 색깔과 마주할 수 있었던 인도 남부 여행. 제법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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