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노동조합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노동조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나라마다 다르다. 노동조합을 특별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는 나라도 있고, 우리나라처럼 설립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나라도 있다.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더라도 실질적인 노동조합으로 인정하는 주요 핵심은 또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보고, 단체협약 결과가 협약 범위 안에 있는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프랑스에서는 대표성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4호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다. 그런데 기술혁신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비용감축을 위한 고용형태 다양화로 인해 이 규정은 현실의 관계를 반영하는 실체를 갖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업자이면서 노동자라는 이중 성격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가 오랫동안 다툼이 되고 있다. 현실의 실체적 관계를 담보하지 못하는 법 규정 때문에 이에 대한 판단은 법원 판례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공유경제,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이 애매모호함은 더욱 커지게 됐다. 즉 법적으로 누가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은 더 많아지고 있다. 존재는 하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있다. 특수고용 노동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속하는 노동으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공유경제의 빠른 확산으로 현재의 노조법은 사각지대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노동의 본류 지대를 그 대상 범위에서 놓쳐 버릴 수도 있다.

노조법 2조4호는 또 ‘공제·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도대체 ‘수양’이라는 표현이 왜 처음부터 노조법 규정에 들어오게 됐는지 그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색채를 띤 단체가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짐작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부분이 심각하게 문제가 됐던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노조법 개정이 수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구는 버젓이 살아 있으니 참 의아하다.

아무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공제’다. 이 문장을 되짚어 해석하면 공제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주요한 사업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공제사업은 노동조합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복지국가 정책이 선진국들의 국가적 사업이 되고, 민간 영리보험의 확산으로 노동조합의 공제기능은 그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초기 노동조합을 형성하는 데 공제 기능은 필수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단체협약으로 기업복지를 향상시킴으로써 공제사업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게 된 점도 노동조합의 공제기능이 약화된 배경이다.

그러나 특수고용·독립노동의 확산으로 노동조합의 공제기능은 전면에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는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두고 벌어지는 실익 없는 논란과 다툼은 이제 없도록 법을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기존 노조든, 신규 노조든 독립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가진 노동조합이 형성되면 우선적인 일이 업종별 표준단가·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표준단가에는 생활임금뿐만 아니라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적 성격의 임금도 포함돼야 한다. 개별 사용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표준단가는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노동조직의 기능에 대한 논의 지형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단체협약으로 각종 기준을 정하는 역할 외에 노동조합이 노동자들 생활에 관련이 있는 여러 사업들에서 직접적인 운영 주체가 되는 일이 중심적 논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고용보험기금을 운영하는 방안, 온라인에서 건별로 노무계약이 이뤄지는 노동자의 산재보험을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공제기능은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보험시장은 영리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데, 납입하는 보험료 중에서 상당한 비율이 사업비와 주주 이익으로 돌아간다. 계약자가 낸 돈이 실제로 얼마만큼 계약자에게 다시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는데, 그나마 가늠할 수 있는 지수가 보험료지수(적립보험료 대비 가입자 실제 부담 보험료)다. 생명보험사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평균 154.9%인데, 이는 15만4천900원을 내면 적립되는 보험료는 10만원이고 사업비로 5만4천900원이 쓰인다는 말이다. 즉 내가 낸 보험료 중에서 35%가 넘는 돈이 사업비로 나간다. 적립보험료가 제대로 지급되는지의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렇다. 만약 노동조합이 공제사업을 한다면 주주이익이 없고, 사업비가 현저하게 적어질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직접적이다.

이처럼 고용형태 변화는 노동조직 형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노동조직 기능에 대해서까지도 새로운 인식과 논의를 요구한다. 부디 몇몇 활동가와 연구자의 관심으로만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란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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