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며칠 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 찾아갔다. CCTV 관제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김용희씨 단식이 54일째 되던 날이었다. 아래에서는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고초를 겪은 여러 노동자들이 비에 무너진 천막을 다시 세우느라 분주하고, 투쟁 중인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노동자들과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찾아와 손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다. 김용희씨는 24년 전 삼성테크윈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가 해고됐다. 오랜 기간 동안 회유와 납치,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그 가족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한 가족의 삶이 무너졌다 한다. 이날 김용희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물과 소금마저 거부한 채 비와 더위를 견디며 삼성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발 뻗을 곳 하나 없는 곳에서 비쩍 마른 몸으로 견디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여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죄책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집회를 마치고 김용희씨를 설득하러 올라간 이들과 같이 내려오기를 바랐고, 페이스북에도 ‘살아서 싸웁시다’라고 쓰려 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나는 정말로 김용희씨가 내려오면 최선을 다해 삼성과 함께 싸우리라 마음먹고 있는 것일까. 삼성과 정부는 침묵하고 있는데, 문제해결을 위한 그 어떤 흐름도 없는데, 나는 그저 지금의 두려움을 모면하려고 이 나이 든 노동자가 설득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고민이 됐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삼성의 노조무력화 공작은 이미 여러 차례 폭로됐다. 1987년 작성된 ‘345지침’ ‘88 삼성노사관리지침 제4호’ ‘89 비상노사관리지침’ 등에는 문제사원을 등급화하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무원 및 경찰과 협조관계를 갖고 대응한 정황도 담겨 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이어 2018년 ‘서비스안정화 마스터플랜’ 문건도 발견됐다. 이 문건들은 고용노동부·경찰이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삼성을 위해 뛰어다닌 정황을 보여 준다. 이 문건들만으로도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노동자의 피로 유지돼 온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김용희씨도 그 피해자 중 하나다.

우리 사회는 삼성을 제대로 정죄하지 못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고·납치·폭행을 저질러도 삼성의 책임자들은 무사했다. 기업의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정부의 인식, 기업의 범죄에 한없이 관대한 사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무노조경영으로 삼성 내부에서 삼성을 견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를 대납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동참하는 등 정치적인 범죄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책임자 일부가 구속되며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삼성은 아직 김용희씨를 비롯한 에버랜드 노동자와 삼성중공업 노동자 해고 등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현재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에서 노조탄압을 저질러 국제적인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정부는 삼성의 편에 서 있다. 국정농단 당사자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뇌물죄 상고심 재판이 진행 중인 올해 4월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정부가 재벌 편에 서 있음을 보여 줬다. 일본의 반도체 재료 수출규제 이후 정부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 총수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했고, 화학물질 관리 규제를 완화하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죽음, 구미와 동탄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끝없는 과로사 등 노동자와 시민들의 고통 끝에 만들어진 법안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청업체의 경쟁력을 죽이며 일본 수입에 의존해 왔던 반도체 재벌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니 그들의 범죄와 환경파괴와 노동자의 숱한 죽음은 바로 묻혀 버린다.

그래서 김용희씨의 싸움은 이 거대한 삼성, 그리고 이들의 범죄에 침묵하는 정부와의 지난한 싸움일 것이다. 다행히 김용희씨는 동료 노동자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고공농성을 이어 가되 단식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안도감이 든다. 모두가 김용희씨처럼 목숨을 건 싸움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함께 목소리를 보태고 연대하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외치려고 한다. 삼성이 김용희씨의 목소리를 듣도록,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가 삼성 때문에 삶을 잃은 이들의 피해를 원상회복할 수 있도록. 삼성은 해고자를 원직복직시켜라! 삼성은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사과하라! 삼성은 노조파괴 공작으로 고통당한 이들의 피해를 회복하라! 사법부는 삼성의 노조파괴 행위를 엄벌에 처하라! 범죄자 이재용을 재구속하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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