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31일 발표한 ‘재량간주근로시간제 운영 안내서’는 재량근로 대상업무 범위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시’에 대한 세부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노사가 재량근로제를 시행하려면 서면합의서에 대상업무를 명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업무의 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 등에 관해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도 반영해야 한다.

◇재량근로 대상업무 범위=신상품이나 신기술 연구개발은 근로기준법 시행령(31조)에 따라 재량근로 대상업무다. 제조업에서 만드는 제품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게임·금융상품 같은 무형제품 연구개발 업무를 포함한다. 프로그래머도 재량근로 대상업무다. 그런데 프로그램만 작성(코딩)하는 경우 대상업무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지시·설계에 따라 재량권이 없는 상태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근기법 시행령상 의복·실내장식·공업제품·광고를 디자인하거나 고안하는 업무는 재량근로를 할 수 있다. 실내장식에는 무대·세트·디스플레이 디자인이 포함된다. 상품 디스플레이는 광고 디자인으로 간주한다.

◇사용자가 지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사용자는 업무 수행 수단이나 시간 배분을 노동자에게 지시할 수 없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시간 배분과 관계없는 업무의 기본적인 내용은 지시가능하다”고 안내서에 명시했다. 예를 들어 업무의 목표·내용·기한이나 근무장소에 대한 지시는 해도 된다.

업무 수행 수단과 관련해서는 △진행상황 확인과 정보공유 등을 위한 업무보고 △업무수행상 필요한 회의·출장 △소정근로일 출근의무 부여 △복구 관리를 위한 출퇴근 시각 기록의무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이 노동부 해석이다. 반면 보고나 회의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 노동자 재량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없다.

근로시간 배분과 관련해 사용자가 통상 1주 단위로 업무를 부여하거나, 업무 수행에 필요한 근무시간대를 설정하는 것은 괜찮다. 통상적인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출퇴근 시각을 재량근로자에게 엄격하게 적용하면 안 된다. 노동부는 안내서에서 “근무시간대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해 사실상 출퇴근 시각을 정하는 것과 같다면 노동자 재량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고 밝혔다.

◇사용자의 부서단위 업무 지시=재량근로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구체적인 업무지시 여부는 부서단위가 아닌 ‘노동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신상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팀에 업무수행 방법이나 근로시간 배분에 관한 재량을 줬는데, 개별 노동자에게 재량이 없으면 재량근로로 볼 수 없다. 해당 팀장이 소속 팀원에게 업무 수행이나 근로시간 배분과 관련해 구체적인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안내서가 미칠 영향은?=노동계는 노동부 안내서가 사용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활용률이 떨어진 재량근로제에 대한 수요가 조금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 52시간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재량근로를 활용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0~11월 사업체 2천436곳을 조사한 결과 초과노동이 발생하는 사업장 1천82곳 중 재량근로제를 도입한 곳은 24곳(2.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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