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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의 어두운 그림자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은 최근 대우조선해양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회사 분할을 단행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서도 제출했다. 기업결합이 성사된다면 현대중공업그룹은 4개 중대형 조선사를 거느리는 명실상부 ‘국가대표’ 기업이 된다. 정부가 내세운 가장 큰 명분도 조선산업의 ‘내셔널 챔피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매각을 통해 산업은행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도 내비쳤다. 대우조선해양은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으로 ‘낙하산 놀이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는데,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기업결합이 기자재업체와 노동자들에게는 어두운 소식으로 들리는 듯하다. 당장 양사 노동조합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불공정거래행위로 피해를 입은 기자재업체들도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 없이 기업결합을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국가대표 육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번 기업결합은 대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경제력 집중을 통한 성장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에게까지 미치지 않음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 게다가 이번과 같이 특정 대기업집단이 한 산업을 사실상 전담하는 경우 호황일 때 과실은 충분히 분배되지 않는 반면 불황일 때 피해는 거래상 약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기’에 현대중공업 말고 대안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이 어느 정도 수주를 회복한 지금이 매각의 적기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부실’과 ‘관치’가 심화하고, 회계분식 같은 범죄까지 발생한 것이 단순히 ‘주인’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고 경영자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주주·이사회, 노동자를 통한 감시가 작동하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상적인 모델은 논의조차 될 수 없는지도 의문이다. ‘주인 찾기’라는 명분은 금융당국이 지난날의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둘째, 현대중공업그룹은 ‘국가대표’로 승승장구할지 몰라도, 대형조선사에 기대고 있는 다수의 협력업체들은 종속성이 심화돼 소위 ‘원청 갑질’에 더욱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동일한 상품시장에서 경쟁하는 회사의 기업결합에서는 소비자(선주)에게 미치는 가격(선가) 변동이 경쟁제한성을 평가하는 핵심적인 기준이다. 따라서 기업결합이 공급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핵심부품인 엔진을 직접 생산하고 있고, 그 비중이 2018년 말 매출액 기준 최대 10%(약 1.5조원)에 이른다. 그중에서 약 0.9조원은 내부거래에서 발생했다. 부품 대체가 쉽게 일어나지는 않겠으나, 현대중공업이 엔진사업부를 키울 기회가 커졌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그간의 행태에 비춰 볼 때 대우조선해양 기자재업체들의 기술유출 걱정도 결코 ‘기우’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후방산업도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를 통해 부품 및 A/S 사업을 영위하는 만큼 더 많은 일감과 사업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한 거래라고 평가할 만하다.

셋째, 구조조정 위험 역시 기업결합을 우려하는 중요한 이유다. 조선업은 20만개 일자리가 5년 사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급격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번 기업결합 역시 생산부문 축소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우려가 크다. 금융당국과 회사는 구조조정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노동진영은 급격한 기업 구조변동이 가져올 결과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 한국조선해양은 물적분할을 통해 연구개발부문만 남기고 사업부문은 자회사로 분리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회사로 이동하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설득과 동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넷째, 이번 기업결합은 엄밀히 말하면 최대 주주 지위의 이전이다. 산업은행은 매각 대가로 한국조선해양 지분 약 18%를 갖게 되므로, 현대중공업지주에 이어 2대 주주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선주는 상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지만, 반대로 보통주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특히 다시 불황이 닥쳐온다면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상환권을 쉽게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우조선해양 위기 때와 같이 ‘대마불사’ 항변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다. 한편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지주와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는데,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동의권 등 지엠과 체결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지엠 사태에 비춰 볼 때 산업은행이 필요한 때에 효과적으로 통제 및 견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지엠 때와 같이 명분 마련과 책임회피 수단으로만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국내 조선업이 제조업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특정 대기업집단에게 사실상 국내 조선산업을 일임하게 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할까. 오히려 국가대표 조선사 탄생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면, 그 길은 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디 기자재업체나 노동진영의 우려를 비전문가 집단의 기우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노종화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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