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현우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요즘 ‘청년퇴사’가 핫하다. 구인구직사이트 ‘사람인’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퇴사한 직원들 중 1년 이하 신입사원 퇴사율은 49%로, 여타 연차의 직원들보다 높았다. 또한 올해 첫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층 비중은 무려 67%로 지난해 대비 4.2%포인트 상승했으며, 그만둔 경우의 근속기간 역시 1년1.6개월로 소폭(0.3개월) 감소했다. 한쪽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욜로’나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이야기하고, 한쪽에서는 퇴사하는 청년들을 향해 ‘근성 없다’ ‘나약하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실제로 이 말은 청년일자리 관련 간담회에 온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사장님들이 너무 확신에 차 말하는 탓에 이제는 인류애적 관점에서 믿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무엇이 진실일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20대의 직장내 괴롭힘 피해 경험률은 75.7%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괴롭힘 행위자의 77.6%가 직장내 상급자였다. 간단히 말해 일터 내에서 연령과 직급이 낮을수록 직장내 괴롭힘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은 ‘퇴사성장률’(?)의 역군인 신입사원이다. 이쯤 되면 청년 신입사원들이 직장내 괴롭힘을 포함한 일터문화 때문에 일터를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 경험적으로 많은 청년들이 퇴사 이유로 일터의 불합리한 문화와 업무방식, 상사의 언행을 든다.

직장내 괴롭힘은 일터 내 위계를 타고 가해지는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신체적 폭력이다. 직장내 괴롭힘 행위자는 양진호 같은 ‘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폭언·사생활 침해·무시·감시·강요·성희롱 등 온갖 종류의 폭력이 만화경처럼 펼쳐지고, 그 가해자는 한 사람일 때도 있지만 여러 명이거나 심지어는 조직 자체일 때도 있다. 그것은 폭발적으로 단 한 번의 순간에 이뤄지기도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피해자를 좀먹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직장내 괴롭힘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기도 난감하다. 괴롭힘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이 있는 곳에는 괴롭힘이 있다’는 생각에 얼마 안 남은 인류애마저 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괴롭힘을 바라보는 시야를 행위자와 피해자에서 일터 전반으로 확대하면 문제의 실마리가 보인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일을 못한다고 온갖 무시와 폭언을 가하는 상사의 경우, 행위자인 상사와 피해자인 신입사원만 두고 괴롭힘을 규정하면 일을 가르쳐 주지 않고서 신입사원에게 일을 못한다고 윽박지르는 상사의 인격적 부도덕함과 폭력성만 보인다. 하지만 시야를 일터 전반으로 넓히면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업무관련 교육은 무엇인지, 새로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소통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에 기반을 둔 OJT(on the job tranning) 매뉴얼이 준비되지 않은 일터의 시스템이 보인다. 다른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사생활 침해·강요·감시 같은 행위가 일터의 위계를 도구 삼아 폭력이 될 수 있음에 대해 조직 구성원들과 논의하고, 그 논의에 기반을 두고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공인노무사의 자문을 받아 취업규칙을 만들거나, ‘고운 말을 합시다’ 운동처럼 ‘갑질 제로’를 선언하고는 보도자료 뿌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일터를 떠나는 것과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일터문화는 무관하지 않다. 청년들 입장에서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퇴사해서 옮긴 직장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을 목도했을 때다. 도대체 청년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무간지옥에 둔단 말인가. ‘청년퇴사’는 역설적으로 청년들의 근성 없음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일터문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오력’을 하지 않는 기업들의 ‘근성 없음’과 ‘나약함’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요즘 청년유니온은 신입사원 청년들이 경험한 일터문화와 괴롭힘·성희롱 경험을 정리하는 조사를 하고 있다. 오늘도 퇴사한 청년 신입사원들을 여기저기서 씹고 있을 기업의 사업주와 인사담당자들에게 더 할 말이 많지만 조사 결과가 나온 뒤를 기약하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를 전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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