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1980년 42.8%, 2000년 48.8%에서 2016년에는 58.4%로 높아졌다. 도식적으로는 여성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연령을 불문하고 여전하다. 만약 여성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 뒤늦게나마 취업하려 한다면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은 낮은 숙련과 단순 반복을 요하는 작업이거나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불안정한 고용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여성이 취업하는 일자리의 양적 증가만큼 노동조건의 질은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 문제는 질병의 업무상재해 판단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예컨대 남성노동자가 조선소에서 취부사(설계도면대로 가용접하는 노동자)나 신호수로 일하다가 허리나 어깨부위 근골격계질환이 발병한 경우에 그의 업무는 상병 부위 부담작업이라고 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업력이 길수록 그에 비례해 업무관련성도 높아진다고 평가한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작업사진이나 작업동영상을 보기도 하지만, 굳이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작업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공구나 기계·기구를 쉽게 떠올릴 수가 있으며 도구들의 무게도 대체로 계량화돼 있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데 용이하다.

반면 급식실에서 식판과 식기류를 세척하는 작업, 쌀 포대를 운반하거나 솥에 담는 작업, 재료를 손질하고 칼로 식자재를 토막 내는 작업, 배식차와 배수구를 청소하는 작업, 건물의 계단을 닦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작업, 환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까지 부축하는 작업, 때로는 환자의 배변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키는 작업 등은 남성의 노동에 비해 작업방식이 비정형적이라 경험칙과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노동 과정을 떠올릴 수가 있다. 건설업도 대표적인 비정형 작업이지만 ‘힘든 일’ ‘위험한 일’이라고 인식되는 반면 ‘돌봄노동’ ‘서비스노동’ 등 여성이 하는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편견이 강하다. 때문에 그 작업이 여성노동자의 손목·어깨·허리·무릎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상대적으로 많은 설명을 요한다. 맹점은 경험칙이 없으면 상상력조차 동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관련성 판정 지침도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에게는 다소 가혹한 기준으로 설정돼 있다. 만성적 과중한 업무 여부를 평가함에 있어서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는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하는지를 보는데, 그 가중요인 중 하나인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는 대한의학회 장해평가기준에 따른 평가표상 노동강도가 ‘힘든(heavy)’ 또는 ‘매우 힘든(very heavy)’에 해당하는 업무여야만 육체적 업무강도가 높다고 인정받는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직종은 육가공(도축), 금속성형, 하역, 설치 및 수리, 건설, 배관, 기계정비 등 현실적으로 여성이 취업하기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근무일 예측이 어려운 업무와 교대제 업무는 가사노동을 병행하는 여성의 진입 차체가 어려운 업무다. 온도와 소음, 유해물질에 대한 민감도도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절대적 기준에 달하지 않으면 유해작업환경에 노출됐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여성노동자들은 사회적 역할로서 과거 가사노동과 육아를 병행해 왔거나, 현재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가사노동 과정에서 질병을 얻어 병원이라도 가면 이는 업무와 관련 없는, 혹은 업무관련성 인정을 방해하는 개인적 위험요인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커진다. 생리학적 관점에서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방은 많지만 근육량이 적어 기초체력과 근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유해물질에 대한 취약성도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업무상질병 판정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신체조건의 차이점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업무관련성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업무와 질병 사이의 관련성 평가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34조4항)하라는 것이지만 실무상 이 원칙이 얼마나 제대로 관철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규제 및 보호방안이 남성의 노동을 디폴트값(기본값)으로 설계돼 왔기 때문에 여성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성별에 특화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재해 예방과 보상 과정에 여전히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되지 않은 점이 성별에 따른 산재승인 격차를 생기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과도기적으로는 질병판정위 심의안건을 상병과 직종에 따라 나누는 방법에 더해 성별에 따라 나눠 심의 회부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같은 근골격계질환이라도 중량물을 취급하는 남성 재해자 사건을 접한 직후 여성 재해자 사건을 심의하는 경우 질병판정위원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판정위원 개개인의 젠더 감수성에 의존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산재승인의 성별격차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성인지적 관점에서 재해조사와 질병판정 지침을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 기준 정립 등 산재예방 행정에 있어서도 성인지적 관점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도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용어가 언급되고 있는 요즘, 유독 산재예방과 보상 분야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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