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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구성원들께 드립니다
▲ 한석호 노동운동가

MBC 계약직 아나운서 부당해고와 관련해 ‘얘들아’로 시작하는 손정은 아나운서 글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손 아나운서가 미웠습니다. 그러다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적폐에 맞선 오랜 투쟁 과정에서 크게 상처받았고, 상처가 심신 곳곳에 파편으로 깊이 박혀서 손 아나운서를 괴롭히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손 아나운서만이 아닌 손 아나운서들의 상태겠구나 싶었습니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등의 온갖 투쟁현장에서 부대끼며 숱하게 봤던 모습입니다. 저 또한 그 상태에 빠진 경험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중 어떤 사안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정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복했다고 믿는데 불현듯 툭 튀어나와 분노의 진흙탕으로 몰아갑니다. 다 털어 버리고 싶은데 징글징글하게 붙어서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습니다. 그 상태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손 아나운서들의 상처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서글펐습니다.

공정방송을 세우려고 연대한 노동시민사회가 최승호 사장을 편들어야 하는데, 왜 계약직 아나운서 편을 들까, 속상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2017년 9월 파업 당시 16~17사번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방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분명하게 풀고 갈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법률상 파업대체인력이란 파업기간 중 업무에 투입하려고 뽑은 초단기계약직을 말합니다. 즉 파업 이전에 채용된 비정규직은 파업대체인력이 아닙니다. 문제는 비정규직이 파업대체 역할을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재벌이 비정규직을 양산한 핵심 이유는 두 측면입니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고, 또 노조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비정규직은 파업대체인력이라는 특성을 내포합니다. 노동운동이 한창 기세를 떨치던 90년대 초반 소사장제라는 형식으로 출발했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됐습니다.

라인이 멈추면 모든 생산이 멈추는 자동차공장 등을 제외하고, 대개의 사업장에서는 정규직노조가 파업해도 비정규직은 일을 합니다. 비정규직이 파업대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파업은 노조의 강력한 무기인데, 위력이 형편없이 반감되는 것이지요. 대표 사례가 조선소입니다. 그중 현대중공업노조가 있습니다.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현대중공업노조는 참으로 처절했습니다. 인간답게 대접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식칼 테러를 당해야 했고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되고 감옥에 갔습니다. 투쟁 과정에서 죽고 투쟁의 후유증으로도 여럿 죽었습니다. 그 탄압과 투쟁의 아픔을 MBC 구성원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30여년 그렇게 겪으며 노조 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에는 한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 노조에서 온갖 난관을 뚫고 파업을 하는데 비정규직이 공장을 돌리고 있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때로는 미치고 환장합니다. 감정이 격한 몇몇 파업 조합원은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에게 쌍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을 켜켜이 쌓고 살아가는 현대중공업노조는 비정규직이 파업기간에 일했다고 해서 비정규직을 원망하거나 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같은 노조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노조가 파업하면 조합원이 된 비정규직은 여전히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도 또 노조는 비정규직을 외면하지 않고 품습니다. 파업 때도 일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중 누군가 개별로 파업에 참여한다고 하면 되레 말립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것이 참다운 연대의 정신이고 노동존중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2012년 그 여름이 떠오릅니다. 공정방송을 지키려는 MBC 파업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저녁마다 여의도에 모였습니다. 그 시민 속에는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 참 많았습니다. 그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적폐의 시대 마봉춘투쟁에 연대한 노동자·시민 중 상당수도 비정규직이었을 것입니다. 그이들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번만 고려해 주면 정녕 안 되겠습니까.

공정방송의 성립조건을 고민해 봅니다. 공정방송이 성립되려면, 노동과 소수자와 인권과 생명 등에 대한 존중, 심지어는 반대편에 대한 존중까지 토대로 깔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인권과 노동과 약자의 세 측면에서 모두 낙제라는 판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손정은 아나운서 글에서 MBC의 아픈 현재를 읽었지만, 밝은 미래의 단초도 읽었습니다. “다가올 1심 판결을 기다려 보자. 만약 법이 너희의 편이라면, 그때는 아나운서국 선후배로 더 많이 대화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MBC 구성원들은 꼭 그렇게 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승호의 MBC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호 진정사건이 됐습니다. 노동부의 1호 행정조치까지 가도록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만 더 기다려 보자, 한 달만 더 기다려 보자 미루며 현명한 조치를 기다려 온 노동시민사회가 행동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시오. 호소드립니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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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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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은 2019-07-22 19:25:01

    직장내 적폐청산하자!!계약직아나운서분들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삭제

    • 2019-07-22 10:11:30

      머잖아 파업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대체인력으로 투입될 것임을 알고 입사한 이들입니다. 애초에 계약직임을 인지하고 지원한 것이고, 법에서 정하는 최대기간 2년 이내에 계약 만료된 것입니다. 이들이 정규직이 된다면 이명박근혜 체제에 일조하지 않겠다며 지원 자체를 거부한 이들은 무엇이 됩니까? 후일에 나쁜 선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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