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과 정치. 언뜻 보면 간극이 커 보이지만 노동과 정치만큼 가까운 것도 없다.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박해철(54·사진)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자들에게 정치를 하라고 하면 거창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우리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우리 스스로”라고 말했다. 국회 앞에서 목이 터져라 외칠 것이 아니라 국회 안에서 우리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노동정치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선 끝에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에 당선한 그는 요즘 전국을 돌며 노동자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도 빠뜨릴 수 없는 일정이다. 어느새 조합원 7만명을 헤아리는 공공노련 위원장도 맡고 있다. 조금이라도 일을 소홀히 하면 ‘정치하느라 그렇다’는 말이 돌아올까 봐 이전보다 이를 악물고 있다고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연맹 사무실에서 박해철 위원장을 만났다.

“국회 담장 안에서 노동자 손으로 제도 바꾸자”

-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개인을 위해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노동자들은 정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나는 노동자야말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같은 법률은 모두 국회가 만든다. 밖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고 구호를 외친다고 법이 그냥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자 요구대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국회 담장 밖에서 외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해 노동자 손으로 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이 전국노동위다. 서울 여의도 1번지에 노동자가 대거 입성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은 조건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전국노동위원장을 맡았을 때 나는 부위원장이었다. 그때는 집권여당이 아닌 시절이어서 엄청나게 힘들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수진 최고위원이 전국노동위원장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당장 전국노동위가 화려한 꽃을 피울 수는 없다 해도 싹을 틔우고 봉오리를 키운다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에 당선한 뒤 “노동중심 정당이 되도록 연결고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전국노동위원장은 어떤 역할을 하나.
“노동현안과 노동정책, 당과 노동자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현장에 있는 노동자 목소리를 어떻게 당에 전달하느냐다. 당의 정책방향에 현장 노동자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당에 충분히 알리고, 그것이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지난해 10월 최초로 선출직 전국노동위원장이 됐다. 이전까지 전국노동위원장은 임명직이었다. 이제는 당대표 선택이 아니라 현장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전국노동위원장이 된다. 현장 민의를 당으로, 제도권으로 제대로 전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국 17개 시·도당에 노동위원장이 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때로는 현안이 있는 사업장을 찾아가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전국노동위가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유다.”

보수정권이 뿌린 노동악폐 뿌리 뽑으려면
내년 총선에서 국회 바꿔야


-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중심 정당인가. 문재인 정부가 내건 ‘노동존중 사회’ 깃발이 꺾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오랫동안 노조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문재인 정부가 내건 노동정책을 평가하자면 가장 완벽한 노동공약이라고 본다. 노동자 숙원사업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공약을 봤을 때 마음이 다 설레더라. 집권하자마자 성과연봉제와 쉬운 해고를 담은 2대 지침을 폐기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도 대폭 줄였다. 퍼펙트하게 없애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때만큼 노동하기 좋은 환경이 있었냐고 반문하고 싶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물론 처우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그래서 공공노련 위원장으로서 수천 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제대로 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처우개선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막대한 재원이 수반되는 문제 아닌가.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보수정권이 뿌린 노동악폐 정책이 한두 개가 아니다. 불과 2년 만에 문재인 정부 공약이 안 지켜졌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그만큼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당과 한국노총 간 정례협의기구를 통해, 그리고 전국노동위에서 단계별로 해소해 나갈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이 원내지도부 교체 이전에는 전국노동위와 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당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였을 때 이수진 전 위원장이 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관계가 어떤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노동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노동존중 정책을 실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최근 내년 최저임금이 2.87%(240원) 인상으로 결정된 것에 이해찬 당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최고위원들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저임금 결정이 기대치보다 낮다는 것에 공감하고 당 차원에서 최저임금 보완책을 검토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일치시키는 정책은 당연히 추진돼야 한다."

- 한국노총은 2017년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얼마 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반노동자적인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것과 관련해 전국노동위 차원에서 성명을 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모든 노동자가 심판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대선 당시 맺은 정책협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책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국회를 바꿔야 한다. 한국노총 정치방침은 규약상 정치위원회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 25개 산별조직과 16개 시·도본부가 하나의 결의를 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년 총선에서 누가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인지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연맹 성장은 발빠른 공공정책 대응과 탁월한 교섭력 덕분"

- 공공노련이 올해 창립 7주년을 맞았다. 14개 조직 2만7천명 조합원에서 7만명에 이르는 공공부문 대표조직으로 성장했는데.
"공공정책에 대한 선도적인 대응이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연맹 사무처 상근자만 18명이다. 탄탄한 기반과 역량은 탁월한 교섭력으로 발휘된다. 그런 신뢰가 쌓여 오늘의 공공노련을 만들었다."

- 공공부문 직무성과급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기재부는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번 기회에 연공서열 중심 호봉제를 직무급제로 바꾸려는 시도로 읽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정년연장은 필요하다. 대한민국처럼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시대적 추세다. 그렇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기재부가 노조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호봉제는 생애소득을 고려한 임금체계다. 신입 때 적게 받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그만큼 지출이 많아지는 생애주기를 고려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제 와서 제도를 바꾸자고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제로섬 방식이 아니라 생애소득을 고려한 플러스섬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공공노동자로서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채널이 없어 공공노동자 목소리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전달되더라도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이제는 제도권에 공공노동자 실상을 제대로 알릴 수 있다. 기재부의 왜곡된 일방통행식 정책에 맞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고 올바른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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