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사내근로복지기금이라는 것이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기업 이익에서 출연·축적된다. 그것으로 휴양소 운영, 장학금 지급, 체육활동 지원, 각종 기념일 기념품 제공 등의 혜택을 임직원에게 제공한다. 싼 이자 대부를 통해 주택 구입자금 및 우리사주 구입비 등을 보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혜택은 정규직 임직원에게만 돌아간다. 비정규직과 하청 임직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니, 바로 코앞에서 달콤한 향기를 솔솔 풍기는 실재하는 떡인데도 먹을 수 없는, 정규직 임직원만 먹고 있는, 그래서 서글픈 떡이다.

기업 이익에는 정규직 피땀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및 하청노동자의 피땀도 녹아 있다. 그래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정규직 임직원끼리만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노동운동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비정규직과 나눠야 한다는 구상을 오래전부터 했다.

2012년이었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서 ‘기업복지 격차 해소를 위한 사내근로복지기금 사회화 및 기금화 방안’이라는 이슈페이퍼가 나왔다. 머리글 소제목은 ‘사회양극화의 공범, 기업복지’다. 내용을 소개한다.

“오늘날 기업복지는 기업 규모나 고용형태 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면서 노동시장 양극화의 한 공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략) 고용형태 또한 마찬가지 상황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업체 내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해 기업복지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기업복지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기업조직에 대한 몰입을 높여 가면서 기업 울타리 밖 이야기에 무관심하도록, 그리고 경제적 조합주의의 관점에서만 노동조합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왔다.”

이렇게 진단하면서 기업복지 격차 해소와 노동자 연대 복원을 위한 방안을 제안했다. 내용은 근로복지기본법상 사내근로복지기금 사업 확대 및 차별금지 규정 신설, 원·하청 공동복지기금 설치, 지역노동복지기금 설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했다. 법으로 막혀 있었다. 사용자는 법 핑계를 댔다. 노동운동은 뚫기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KB국민은행에서 성과를 만들었다. 은행은 노사합의를 통해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임직원들에게 노동절 기념 복지포인트를 지급했다. 은행은 직접 도급받는 업체 소속 노동자와 파견노동자에게도 복지포인트를 지급했다. 비정규직 각각에 지급된 액수는 도급·파견 12만5천원, 시급제 파트타임 25만원, 일급제 파트타임 50만원으로 4천604명이 혜택을 받았다. 비정규직들에게는 알토란 같은 노동절 선물이었다.

KB국민은행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근로복지기본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원청은 도급 및 파견노동자 복리후생에 사내근로복지기금의 기본재산 총액 20%까지 쓸 수 있게 됐다.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파견·용역노동자 처우개선에 사용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지출비용의 50%를 지원한다. 다만 법에는 여전한 맹점이 있다. 원청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2·3차 하청노동자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법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장벽을 우회해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조가 정규직 몫으로 총액을 받아 나누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정규직만 사용하지 않고 비정규직·하청노동자와 나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가 현실로 만들었다. KB국민은행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비정규직과 나눈 것은 법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홍배 지부 위원장을 비롯한 KB국민은행지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관철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의 성과는 금융노조 소속 은행들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올해도 산별교섭에서 ‘양극화 해소 및 업무개선 방안’을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에 제안했다. 방안 중 하나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사내근로복지기금 활용이다. 사용자협의회는 경영상황과 무관하게 의무화하거나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금융노조가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

2017년 현재 1천672곳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운용하고, 기본재산으로 총액 8조2천852억원이 축적돼 있다. 8조원, 기금 운용기관 숫자에 비해 상당한 액수다. 기금을 운용하는 기업은 대개 공공기관과 규모 있는 민간기업이다. 대다수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등은 엄두를 낼 형편이 안 된다.

사내근로복지기금에는 정규직 임직원 피땀만 녹아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과 하청 임직원 피땀도 녹아 있다. 노동운동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비정규직·하청과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사회복지 확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금융노조의 시도는 양대 노총 모든 산별노조를 비롯한 전 사회로 확장돼야 한다. 그것이 노동운동의 역할이고, 그것이 연대사회를 향한 걸음걸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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